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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부분)

등록일 2022-02-10 20:36 게재일 2022-02-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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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

나는 달의 감식가,

평생 달을 맛보도록 되어 있다

 

멀리 좁은 길들이 꿈틀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안 보이는 곳까지

그들을 쓰다듬어주었다

길들은 이내 온순해졌다

 

둑을 핥으며 들불이 번지고 있었다

둥근 달이 안개 속에 떠 있었다

나는 달을 깊숙이 빨아들였다

하늘이 캄캄해지고 길들이 어둠 속에서 낮아졌다

 

몸이 환해졌다

내가 둥글게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밤의 세계와의 회통에 성공한 능수능란한 마녀 같은 이다. 그가 길들을 쓰다듬으면 이내 길들은 온순해지는 것이다. 길이 미래를 상징한다면, 이제 미래는 이 ‘나’의 것이다. ‘나’는 “달을 깊숙이 빨아들”이고는 역설적으로 새롭게 생명의 빛을 내뿜어 몸이 환해진다. 죽음을 들이마심으로써, 즉 주체의 해체를 감행함으로써, ‘나’는 세계와 동화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달처럼 “둥글게 떠오”르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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