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한 고급 호텔, 세계적인 지휘자 ‘프레드 밸린저’는 이곳에서 지인들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 가벼운 산책과 마사지, 목욕 등으로 하루를 채우며 과거를 회상한다. 가족과 친구, 직업, 예술혼 등 가벼운 대화가 오간다. 평생을 지휘자로 살아온 예술가답게 곳곳에서 소명의식이 묻어난다. 물론 대화의 진짜 화두는 ‘나이 듦’이다.
세계적인 영화 거장 ‘파울로 소렌티노’의 2016년 작품, 영화 ‘YOUTH’(유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젊음과 쇠퇴하는 육체를 주제로 묵직한 울림을 던진다. 동시에 대자연의 풍광과 머드 마사지, 물의 이미지로 영상미를 추구한다. 의사와 함께 건강상태를 확인하며 목욕과 산책, 마사지하는 모습이 무한 반복된다. 유영하는 신체는 신비와 노화의 양극단을 오간다. 휴양의학을 풍경 삼아 인생 황혼기를 의미심장하게 그려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휴양의학의 관심이 높다. 휴양의학은 산과 바다, 기후에 숨어있는 치유자원을 의학적으로 활용해 질병 예방과 증상완화, 재활을 돕는 의학이다.
영화에서처럼 노년층의 항노화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심리·재활치료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 코로나 이후 각광받고 있다. 바닷가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휴양의학의 경우, 현재 시범 사업에 들어가 태동기를 맞는 중이다.
실제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테레인쿠어(Terrainkur·지형요법)를 진행하는 치료집단을 만난 적이 있다. 해양 테레인쿠어는 백사장이나 해안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운동치료로 해양지형요법이라고 한다. 도심의 평지보다 운동효과가 좋고 지구력 향상에 제격이다. 당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오를 갖춰 백사장을 걷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해풍을 맞으며 파도소리에 집중했다.
해풍 또한 해양치유자원의 하나로, 음이온이 풍부해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해양수산부는 완도와 태안, 울진, 경남 고성에서 해양치유 시범사업을 추진, 해양치유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
해양치유, 아직은 생경한 단어다. 해수와 해풍, 머드 등 해양치유자원을 활용한 자연치유법으로, 휴양의학의 한 분야다. 프랑스와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치료 효과가 입증돼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식이나 폐쇄성 폐질환 환자의 경우, 의사 처방으로 해양치유센터에서 휴양 치료가 권해진다.
프랑스에서는 탈라소테라피(thalsso-theraphy)라는 해양치유법이 하나의 의료체계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드라보나디르 의학박사에 의해 처음 도입된 치유법으로, 의료인과 해양자원 전문가 등이 참여해 치유 대상과 목적, 치유방법 등을 면밀히 살펴 만성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 불면증 등을 치료한다. 이 외에도 해양치유법에는 해양 테레인쿠어(Terrainkur·지형요법-해안가 걷기)와 해풍욕, 솔트테라피(Salt therapy·소금치료요법), 헬리오테라피(Heliotherapy·태양광선요법), 해초요법 등 다양한 치유법이 존재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달 ‘해양치유자원의 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26년을 목표로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형 해양치유 모델(K-Marine Healing)을 창출, 해양치유 자원을 발굴하고 해양치유 서비스 인프라를 조성한다고 한다. 해양치유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지정하고 전문자격 이수 과정도 설계한다. 해양치유 전문가와 함께 바다를 벗 삼은 치료를 받는 날도 멀지 않았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모래성을 쌓다보면 안온한 몰입을 경험하곤 한다. 칼 구스타프 융의 모래놀이라는 전문적인 심리 치료법을 언급하지 않아도 모래 놀이의 효능은 이미 입증돼 있다.
필자 역시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감을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해풍을 맞으며 날려 보내곤 했다. 아이와 함께 모래동굴을 파고, 바닷물을 길어와 채우며 바다를 만끽했다. 의료진과 해양치유자원 전문가가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었는데도, 효과와 효능은 그 어떤 항우울제보다 탁월했다.
관계는 존재를 선행한다. 오롯이 혼자 존재하는 이는 없다. 코로나19 이후 단절된 관계는 존재를 흔들었고,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났다. 결국 다시 회복이다. 해수부에서 내건 슬로건 역시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을 바다에서 치유하라’고 권한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으로부터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지고 바다는 흐른다.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겨울바다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불안은 던져두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걸어보자. 눈 시린 겨울바다를 응시하며,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안온함이 느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