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이 효율성을 보장 할 것인가.
때로는 이 질문에 깊은 의문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효율을 위해 공정성을 조금 희생할 수는 없을까?
산업경영공학에는 OR(Operations Research) 또는 운용공학이라고 불리는 과목이 있다.
시스템의 최적화를 위한 여러 가지 기법을 배우는 과목인데 여러 가지 기법 중에 ‘대기행렬 이론’(Queuing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OR은 전체적으로 확정적 모델과 확률적 모델로 나누는데 대기행렬 이론은 확률적 모델에 속한다. 확률적인 상황에서 최적을 구하는 것이다. 즉 은행창구 같은 곳에서 무작위로 방문하는 고객들을 한 줄로 세울 것이진, 여러 줄로 세울 것인지 어느쪽이 더 효율적인지 검토하는 이론이다.
요즘 공공장소에 가면 ‘한 줄 서기’ 운동을 장려한다. 기차표를 살 때도 여러 개의 창구가 있어도 창구마다 줄을 서지 말고 한 줄로 서라는 의미이다.
“왜 한 줄로 서는 것이 좋은가”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잠시 생각하다가 나오는 답은 “공정하니까”라는 답을 한다.
훌륭한 답이다.
여러 줄로 서면 늦게 온 사람도 줄만 잘 서면 먼저 표를 살 수 있는데 반하여 한 줄로 서면 적어도 뒤에 온 사람이 앞에 온 사람보다 먼저 표를 구입할 수는 절대로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 줄 서기’는 확률적으로 공정성을 보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정성보다 더 중요한 한줄서기의 효과는 대기행렬에 있는 사람들의 대기시간의 합이 확률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이는 수학적으로 간단히 증명 가능하다.
맨 앞줄의 사람이 티켓구입에 시간을 많이 끄는 경우 한 줄 서기는 그 손님만 제외하고 다른 창구에서 빠른 순환을 할 수 있지만 여러 줄 서기에는 그 손님 뒤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의 대기시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예는 ‘공정과 효율성’은 서로 상관관계가 높다는 대표적인 예이다. 즉 시스템이 공정하게 돌아가면 효율도 올라간다는 것으로 OR에서 자주 인용되는 예이다.
한국 건설 현장에 가면 ‘돌관공사’라는 말이 있다. 빠른 속도로 공사를 한다는 것인데 부실공사를 만드는 요인도 된다. 적당히 하면 효율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창피하게도 수백 명의 사망자를 만든 건물 다리 붕괴 등 대충주의에 의한 사고도 잦고, 이러한 공정을 해친 적당주의에 따라 세계적으로 교통사고율이 높다.
공정과 효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신호등 없는 사거리의 차의 주행이다.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꼬리 잇기를 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이다.
한국에서는 신호등 없는 네거리에서 대부분 멈추지 않고 꼬리 잇기를 한다. 일견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자동차 사고가 여기서 많이 난다. 한국의 신호등 없는 사거리는 바닥에 하얀 페인트로 차 사고 표시를 한곳이 유난히 많다. 잘못된 교통질서 지키기와 함께 잘못된 신호체계도 문제다. 차량이 거의 없는 새벽에는 교차로의 신호등은 깜빡등으로 처리해야 하는데도 많은 경우 신호등이 방치돼 있어 빨간불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리는 차를 흔히 볼 수 있다. 삼거리에서 마주 오는 차량에 우회전과 직진을 줄 때 내게는 직진을 줄 수 있는 데도 빨간불로 막는 예도 있다.
일부 신호체계의 모순은 운전문화의 후진성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비보호 좌회전’이 우리에게 일반화되지 못하는 것도 급하게 좌회전하는 ‘빨리빨리’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경적소리를 남발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일본이나 미국에선 거리에서 경적소리를 거의 듣기 어렵다고 한다.
한국 교통문화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이러한 후진성이 공정성을 파괴하는‘적당주의’와 관련이 있고, 그런 적당주의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공정성을 해치는 적당주의를 거부하는 엄격한 제도 때문 아닐까?
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및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사고, 연구업적 부풀리기 같은 학계의 문제, 또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사회, 학계,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오는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종 공약이 남발되고 있다. 그러한 공약에 공정성이 정밀히 검토되지 않고 표를 얻기 위한 것만이 기준이 된다.
공정을 해치더라도 효율(득표)만 된다고 생각하면 공약을 발표한다. 그러나 유권자는 그렇게 가볍고 단순하지 않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공정성이 효율을 가져온다는 즉 공정한 정책이 득표를 가져 온다는 ‘대기행렬 이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