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 해에는 동물의 왕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바닷가에서 붉은 태양을 보고 싶었지만 올해도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고 일출명소는 폐쇄되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있다가, 사흘 후 새벽 호미곶으로 차를 몰았다. 포스코 불빛을 보며 영일만의 희끄무레한 여명을 뚫고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섰다. 잠시 후 수평선에 태양이 솟는다. 백여 명쯤 되는 관광객의 환호 속에 ‘상생의 손’은 ‘화합하고 화해하며 서로 도우며 살라’는 의미를 담아 붉은 해를 떠올린다. 나도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두 손을 모았다.
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행사는 취소됐지만 포항시장은 사자성어 ‘임난용지(臨難勇智)’를 펼쳐 들고 ‘어려운 일에 임할 때 용기와 지혜로 극복하자’는 새해 인사를 전하며 시민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했고, 경북도는 ‘호랑이 기상으로 당당한 경상북도’를 신년 화두로 삼았다. 호미곶, 대보(大甫)는 육당 최남선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이라고 했고, 격암 남사고는 한반도를 호랑이 모양으로 보고 백두산은 코, 이곳을 ‘범꼬리’라 하여 호미등(虎尾嶝)이라 했다. 호랑이 꼬리는 바로 힘, 지도력의 표시다.
광장으로 올라오면 왼손 모형 앞의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에는 새천년이 시작될 때 변산반도 해넘이, 호미곶 해돋이 그리고 독도와 태평양 피지섬의 햇살로 채화한 ‘영원의 불씨’가 타고 있어 기쁘지만, 새해 첫날 많은 관광객에게 떡국을 끓여주었던 국내 최대 가마솥은 뚜껑이 닫혀있어 아쉽다. 연오랑세오녀가 마주 보며 반기는 조각상을 보고 부부의 정을 생각해보며 새천년기념관 옥상에 오르면 하얗게 빛나는 태양의 난반사가 고운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립등대박물관과 등대역사관, 국내 최대의 호미곶등대를 둘러보노라면 광장과 바다전망대의 돌문어 조각 두 개가 미소를 자아낸다.
검은 돌이 파도에 씻기는 바닷가 해파랑길 옆 낮은 해송 숲속에서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를 찾아 시도 읊조려 보고 ‘영일노래비’에서 옛 이름 ‘도기야’와 영일(迎日)의 뜻도 새겨본다. 과메기 말리는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대보항을 둘러보고, 고금산 정기 받은 호미곶과 보리향기 그윽한 구만리 벌판을 노래한 호미곶면가를 되새기며 언덕을 넘으면 흑구문학관 뒤쪽으로 넓은 청보리밭이 펼쳐지는데 아직은 파란 새싹들이다. 청어를 갈고리로 끌었다는 ‘까꾸리개’에는 일본 실습선 쾌응환(快鷹丸) 조난비가 있고 그 아래 신비로운 독수리바위가 영일만을 지키려는 듯 고개를 쳐들고 있다.
호미곶은 원래 ‘말갈기 같다’고 장기곶(長鬐串)이라 했는데 학창시절에 토끼꼬리라고 배웠고 이제는 호랑이 꼬리다. ‘호랑이 꼬리에 나무를 심자’는 호미수회의 열정이 담긴 호미숲터에서 소맷돌 ‘악어바위’를 내려다보며 호랑이 꼬리 만지듯 지나 본 새해 아침, 청보리 푸른 3월 지나 노란 유채꽃 넘치는 5월도 지나면 청포도 익는 7월엔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려니… 호랑이 기상을 받아 국운의 상승과 국태민안을 이루는 큰 손님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