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
봄날에 꽃이 핀다는 건
세상의 금기 같은 것을 깬다는 것
깨고 일어선다는 것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 집
그 집 작은딸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논둑을 폴짝거리며 뛰어가듯
흙 묻은 맨발로 안방을 걷듯,
그렇게 작고 여린 것 하나를 거역하는 것.
베란다 화분 흙을 다 갈아 치우며 흔적을 털며
그렇게 옹색하게 다시 살림을 차리는 것.
그늘 쪽에 있던 화분 몇 개를 양지 쪽으로 옮기며
내년에는 오래 산 이 낡은 집을 이사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내의 펑퍼짐한 등짝을 보며
(….)
꽃이 진다는 건
생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는 벅찬 말씀.
꽃이 핀다는 사실은 그전까지 유지되어온 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사건이다. 그것은 “흙 묻은 맨발로 안방을” 걸으면 안 된다는 작은 금기를 ‘거역’하면서, 이사하듯 다른 삶을 조용하게 시작하는 일이다. 그래서 꽃이 핀다는 사건은 ‘금기-예전 삶’의 죽음을 전제로 하며, “꽃이 진다는 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벅찬’ 사건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