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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피아노가 있던 풍경

등록일 2021-12-20 20:22 게재일 2021-12-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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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

영화 ‘피아노’의 전개는 섬세하다. 그 섬세함은 순전히 배우들의 연기력에서 기인한다. 배경은 생경하고 아름다우며, 진행은 겉잡을 수 없이 전개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빼곡히 화면을 채우고 있다. 여기에 시대적 배경과 장소, 피아노라는 사물과 주인공 ‘에이다’의 인물 설정들이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영화는 하나의 층위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다양한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쉽게 짐작된 층위가 만만찮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19세기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뉴질랜드라는 장소부터 시작해야 한다. 18세기 초 영국은 뉴질랜드협회를 세우고 식민운동을 시작한다. 연이어 뉴질랜드 토지회사를 설립하고 뉴질랜드의 토지를 마음대로 팔아 먹는다. 당연히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백인들의 충돌이 일어나고, 19세기 말에 들어서 인종분쟁이 끝나고 마오리족의 공식적인 영국화가 시작된다. 서구의 식민주의와 원주민 사이 문명간의 충돌이 첨예했던 식민주의 뉴질랜드다.

이러한 배경에 여섯 살때부터 말하기를 그만두고 침묵을 선택한 ‘에이다’는 미혼모로 아홉 살 난 사생아 딸 ‘플로라’를 데리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머나 먼 곳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에 도착한다. 그녀의 짐이 뉴질랜드 해안가에 부려질 때, 피아노도 함께였다.

‘에이다’와 딸 ‘플로라’가 뉴질랜드에 도착하면서 남편 ‘스튜어트’와 근처에 살고 있는 ‘베인스’가 등장한다. ‘스튜어트’와 ‘베인스’는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온 백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현지에서의 생활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뉴질랜드로 옮겨 진 피아노는 이들 사이에서 단순한 악기 그 이상의 배치에 놓이며, 다양한 층위의 상징과 은유로 역할을 맡는다.

피아노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장소를 이동한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말처럼 “아주 무겁고 시끄럽고 거추장스러운 악기”가 바다를 건너 해변가에 머물기도 하고, 진흙탕길의 밀림을 거쳐 ‘베인스’의 집으로 다시 ‘스튜어트’의 집으로 옮겨 다닌다. 영화 후반부에서는 깊은 바다 속으로 잠긴다. 피아노가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모종의 거래가 일어난다. 땅과 육체, 감정의 거래조건으로 피아노가 놓인다.

식민주의는 쟁탈의 역사였다. 원주민의 관념에서 거래될 수 없는 것들을 유럽에서 건너 온 백인들이 빼앗고 거래하며 ‘탐욕’과 ‘욕망’을 채워 나가던 시기다. 원주민의 역사에서 땅을 비롯한 자연은 주인이 없었다. 그것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공동으로 잠시 이용할 뿐이었다. 쟁탈의 세계관과 원주민의 세계관이 충돌하여 피로 물들던 시대다. 이러한 식민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호기심’과 ‘에로티즘’이라는 요소를 더한다.

말을 하지 않는 ‘에이다’는 손가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우선 수화(手話)가 그러하며, 간단한 의사전달을 위해 연필을 잡은 손가락이 그러하다.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피아노, 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가락이다.

주인공 ‘에이다’가 ‘왜 말하기를 그만두었는가’와 ‘왜 그토록 피아노에 집착하는가’의 직접적인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피아노가 놓인 곳 마다 ‘에이다’는 피아노를 따라다니며 연주한다. 뉴질랜드의 해변에서 ‘베인스’의 집에서 손가락을 이용해 피아노를 치고 대화를 나눈다.

다양한 층위의 은유와 상징으로써 피아노는 여러 방식으로 거래된다. 물론 피아노를 둘러싼 거래품목들, 주고 받는 것들이 일반적이지 않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거래를 끊어내는 방식이 충격적이며 명쾌하다.

피아노의 이동과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의 거래 내역 속에서 식민주의와 여성성과 에로티즘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섬세하게 보기보다는 거칠게 보아야한다.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기저에 놓인, 그 다양함이 어느 선상에서 출발하느냐의 문제다. 혈연과 결혼, 가족 단위에서 국가적 단위로까지 이어지는 바탕에 깔린 ‘탐욕’과 ‘욕망’ ‘호기심’ ‘에로티즘’과 ‘사랑’의 단어들이 부정과 긍정,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를 넘나든다. 19세기 뉴질랜드가 그러하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생경하고 아름다운 풍광과 정확하게 나눠지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과 풍성한 의미를 담은 피아노 선율과 함께하는 영화다.

/(주)Engine42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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