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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요한 풍경(부분)

등록일 2021-12-06 19:09 게재일 2021-12-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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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마을 앞 개울도 한옥 뒤란의 대숲을 통째로 빼앗아 흐른다 그래도 그 집들은 그걸 돌려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싸운 다음에야 확인할 수 있는 평화, 개울물도 저희들끼리 부딪히고 엉켜 싸울지라도 넘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 아랫마을로 향한다

 

갑자기 장끼 한 마리가 논두렁 위로 날아간다 백자가 파삭 깨져버린다 깨지는 순간은 언제나 처연하다 아니 찬연하다 누구의 눈부셨던 시절도 나타나 어리둥절해 한다

시인은 백자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서 자연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진 경지를 발견한다. 대숲과 개울, 집 한 채가 적요하게 놓여 있는 마을이 새겨진 저 백자는 자연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언어를 전달한다. 백자에 새겨진 장끼도 진짜 장끼와 구분되지 않는 경지에 놓여 있다. 그래서 백자 바깥으로까지 날아갈 듯한 백자 속 장끼의 모습은 백자를 “파삭 깨”뜨리는 ‘처연’하면서 ‘찬연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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