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촛불도 없이 어떤 기적도 생각할 수 없이
나는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난 춥고 가난하였다 연신 파랗게 언 손을 비비느라
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나 손을 비비고 있었을까
그때 정말 기적처럼 감싸쥔 촛불이 켜졌다
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겠지만
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 바칠 수 있던 건
오직 그 헐벗음뿐, 어느새 내 팔도 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
나는 무릎을 끓고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
어깨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거운 촛대를 얹고
시인은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서 촛불도 없는 제단에 나아가 기도를 올렸다. 기도는 시인도 놀랄 만큼 ‘기적처럼’ 이루어졌다. 시인 자신이 촛불이 되어버림으로써 그 기도는 달성되었던 것이다. 절실한 갈망은 시인 자신을 존재 변이시켜 갈망을 이루게 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적’이지 않다. 팔이 양초로 변한다는 거짓말. 하지만 시의 세계에선 그 거짓말이 진실이 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