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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학의 노래, 입암28경

등록일 2021-11-07 19:51 게재일 2021-1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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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대수필가
윤영대수필가

영남유교문화권에는 서원과 향교, 재사와 종택, 누정(樓亭) 등이 널려있는 노천박물관이 많고, 그중 포항 죽장면 입암리는 명승지이기도 하다. 옛 선비들의 낭만적 삶을 찾아가는 길, 자호천 따라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입암 28경은 임진왜란 때 대학자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이 피난 왔다가 그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면서 시를 쓰며 이름 지었고, 이곳에 정자를 지어 후학을 가르치고 벗들과 시가를 읊으며 40여 년간 고고한 삶을 살다가 84세에 세상을 뜬 곳이다.

조용한 서원 앞에 주차하고 돌계단을 오르니 300년 된 은행나무가 거느린 울창한 송림 속의 서원은 닫혀 있어 낮은 담장 너머로 보면 입암서원(立巖書院)이란 투박한 서각의 현판이 걸린 곳은 강당, 그 뒤뜰의 묘우(廟宇)에는 장현광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봉 권극립, 우헌 정사상, 윤암 손우남, 수암 정사진 등 사우(四友)의 위패가 봉안되어있다. 입암서원은 경북기념물 제70호로 지정되고 유물들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가을바람에 끌리듯 동봉 권선생 유허비를 돌아 마을에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만활당(萬活堂)을 들여다보고 가사천 개울로 내려갔다. 물가에 탕건을 쓴 듯 우람하게 서 있는 탁입암(卓立巖)과 춤추는 듯한 처마가 고운 일제당(日<8E8B>堂)은 서로를 바라보듯 사랑스러운 한 쌍인데, 그사이 기여암과 계구대 바위가 시샘하듯 둘러싸고 있다. 28경의 중심, 그 한적한 난간에 앉아 맞은편 구인봉을 보며 옛 선비의 ‘입암13영(詠)’을 듣고 싶다.

입암 아래 돌다리 답태교는 흔적도 없고 물가에 놓인 상두석 수를 헤아려보니 7개, 그래서 북두칠성을 노래했었구나. 맨발로 건너서 깨끗한 경심대 반석에 앉아 마음을 씻으면 맑은 수어연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헤아려본 문객들의 유유자적한 풍류가 그리워진다. 개울 건너 피세대 절벽 아래는 맑은 물이 흘러들어 여름철에는 캠핑족들의 낙원이 된다. 발 씻고 그 앞의 넓은 잔디밭으로 건너가니 노계 박인로 시비가 단아하게 서서 ‘입암별곡(立巖別曲)’을 노래하고 있다. ‘무정히 선 바위 유정하게 보이나다….’

목이 말라 솔안마을에 있다는 물멱정 샘을 찾으며 서원원무소를 지키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더니 만활당 뒤쪽이란다. 큰 느티나무 둥치 뿌리 사이에 솟는 작은 샘물을 한 움큼 마시고 갈증을 씻었다. 다시 차를 타고 함휘령, 산지령을 먼발치에서 보며 상암대와 욕학담으로 갔는데 홍수에 떠내려온 나무들이 걸려있어 모습을 잃었고, 허탈한 마음으로 읍내로 내려와 자호천과 가사천이 만나는 합류대(合流臺)를 찾았더니 입암교 부근은 지난여름 태풍이 할퀴고 간 상처가 가득하다, 부근에 있었다는 향옥교와 화리대, 경운야와 야연림의 사라진 옛 흔적을 찾다 보니 해는 어느덧 서산에 기운다.

옛 선비들의 ‘안빈낙도 선공후사(安貧樂道 先公後私)’의 가르침을 안고 되돌아오는 길, 마지막으로 세이담이 있는 까치소 맑은 물에 귀를 씻었다. 여러 관직에 불리었으나 정치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한 여헌 선생 같은 인물이 이 시대에도 나와, 참된 말씀을 들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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