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위기에몰린지방도시 살리기
도시. 우리는 그것을 대부분 딱딱한 건물과 도로로 구성된 사물의 집합체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최근 도시를 살아있는 유기체, 즉 생명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늘고 있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맞은 후 쇠퇴하는 우리 사람처럼. 문제는 지방의 도시들 대다수가 생명력이 다해 이제는 소멸의 위기에까지 몰린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생존전략을 발휘해 경쟁하고 있지만 결국 엄혹한 진화의 과정에서 소수의 생명만이 ‘도시’라는 유전자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영덕군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 영덕군은 수많은 공모를 통해 국비를 끌어 모은 후 여러 사업들을 연계해 관할구역인 영해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대단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작은 지방자치단체에겐 대담한 도전이 될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는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생존의 갈림길에 놓인 다른 수많은 지방자치단체들에겐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과연 영덕군 영해면은 대한민국 도시재생의 모델하우스가 될 수 있을까?
영덕군, 공모사업 통한 영해면 도시재생 프로젝트 추진
2025년까지 예산 1천700억 투입 도시재생·SOC 확충
지역공동체 중심 사회·경제적 주민활동 강화작업 박차
◇ 왜 도시 ‘재생’ 인가
때는 바야흐로 2002년. IMF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은 경기의 부양정책으로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붐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허름한 건물을 밀어버리고 휘황찬란한 고층건물을 세우면 모두가 도시인의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꿈꿨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뉴타운·재개발 사업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영덕군이 성장 중심의 재개발·재건축이 아닌 지속가능성 중심의 도시재생을 선포한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인 교훈의 발로이며 그 핵심가치엔 공공성이 있었다. 주민들이 소외되는 그 어떤 개발사업도 명분이나 효능이 없다는 것이다. 영덕군의 이러한 기조는 되새길만하다. 새로운 인구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방도시에서 주민들을 배재한 개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영덕군이 영해면에 그리는 ‘도시재생’은 시대적 요구이며, 전성기가 지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공간의 기능을 회복시킴으로써 주민들의 생활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사회, 경제, 문화, 주거, 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비전과 실천인 셈이다.
◇ 뉴딜을 넘어 도시재생+SOC확충의 콜라보레이션
영해면에 시행될 도시재생사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영덕군은 2018년부터 2025년까지 8년간 영해면 일대에 1천700여억원의 예산을 투여한다. 모두 국비를 확보한 사업들이다. 영덕군의 도시재생사업이 여타 시군의 뉴딜사업과 차별화되는 것은 비단 그 규모의 우월성만은 아니다. 각각의 사업들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도시재생사업들 간의 연계, 그리고 도시재생사업과 사회간접자본(SOC) 구축사업 간의 연계가 유기적으로 융합해 서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그 예로, 최근 국비를 확보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대상지인 영해면 성내리 일원의 주거환경정비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143억원이 투입되는데, 이 일대와 교집합을 이루어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450억원)’,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150억원)’과 같은 기존에 국비를 확보한 도시재생사업들이 긴밀히 연계돼 있고, 여기서 다시 ‘예주 행복드림센터 조성(147억원)’, ‘3.18만세시장 보행환경 조성(16억원)’과 같은 SOC 구축사업이 융·복합되면서 각각의 사업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서로를 보완·견인하고 있다.
영덕군의 이러한 복안은 도시를 수많은 세포가 모이고 각각의 기관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는 철학에서 기인한다. SOC 구축으로 뼈를 형성하고, 그 위에 도시재생사업으로 근육을 단련하며, 그 속에 주민들의 사회적·경제적 활동에 생기를 북돋아 장기를 강화한다. 영해라는 생명활동의 중심에 ‘지역공동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영덕군은 여러 도시재생사업의 계획착수 단계부터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주민협의체와 주민위원회의 발족을 이끌어 민관이 긴밀히 협조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주민들을 사업의 주체로 세워내는 노력들을 아끼지 않았다.
◇ 영해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은 ‘도시 정체성’ 복원!
그렇다면 과연 영해라는 생명체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덕군이 영해면에 시행하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일련의 도시재생사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주’로 기억되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확립하는 일, 바로 영해의 정체성을 공표하고 이를 도시경쟁력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지방소멸이 가속화되고 지자체간의 경쟁이 심화된 오늘날엔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역사·문화적 정체성이 그 도시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낡은 건물을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번듯하게 올리는 것이 전부인 재개발사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에 새로 조성되는 신도시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아질 수밖에 없지만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깃든 지역은 절대적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태어나 쇠퇴기를 겪는 서구의 도시들이 역사와 문화를 도시재생의 핵심전략으로 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영해는 2,000년 전 삼한시대의 신비로운 우시국을 시작으로 남쪽의 경주, 북쪽의 강릉과 버금가는 동해안의 거점도시였고, 고려 해안방어의 요충지로 읍성이 건축됐으며, 일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신돌석 의병장의 항일운동과 동해안 최대 만세운동이 펼쳐진 충절의 도시이다. 영덕군의 여러 도시재생사업이 영해 주민들의 생활근거지이자 역사·문화의 상징인 만세시장을 중심으로 폭넓게 융합된다는 것은 도시의 정체성을 복원하고 계승하는 것이 영덕군 도시재생사업의 본질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를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공동체 통합이 바로 영해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영덕군의 도시재생사업은 ‘영해가 확 바뀐다’, ‘동해안 중심도시로 도약’ 등과 같은 과장되고 상투적인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다. 모든 도시가 그렇듯 쇠퇴기를 겪는 ‘영해’가 건강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남다른 케어 프로그램을 가동했다고 볼 수 있다. 영덕군의 도전적인 도시재생사업에 관찰이 아닌 관조의 시선이 보내지는 것은 변화될 ‘영해’가 보여줄 드라마이며 그것이 끼칠 영향력일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