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636년 병자년 12월 14일,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도성까지 다달은 청의 부대를 피해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이듬해 1월 30일까지 버티다 마침내 굴욕적인 항복을 받아들여 인조는 청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소설과 동명의 영화 ‘남한산성’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인조가 걸어서 나온 47일간의 기록이다. 김훈 작가의 첫 문장처럼 인조는 떠밀리듯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마지못해 남한산성을 나오게 된다. 전란의 와중에 조선의 섬처럼 남은 남한산성 안에서 매섭고 날카로운 대결이 펼쳐지고, 그 대결과 함께 영화의 홍보문구처럼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혀’ 성밖을 넘지 못한다.
주화론자(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와 척화론자(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는 대의와 명분, 목숨과 백성을 들어 냉혹하고 처절한 논쟁을 벌인다.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들의 말은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인조의 나아갈 길을 극단으로 제시한다. 치욕을 견뎌 목숨을 구할 것인가, 죽음의 길을 택해 명분을 구할 것인가의 길이다.
성밖 전장에서는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전투가 펼쳐지고, 남한산성 안에서는 화친과 항전을 둘러싼 말(言)의 싸움이 지속된다. 임금 앞에 시선을 내리깔고 조아린 모습들 속에서 서슬퍼런 말의 칼날이 부딪치고, 한 겨울 삭풍보다 매섭고 날카롭게 상대를 파고든다. 왕은 또 다른 선택지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다그치지만 그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인조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흔들린다. 성안의 식량상황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인조는 “아껴서 오래 먹이되, 너무 아끼지 말아라”는 말로 하명한다. “얼마나 아껴야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그것까지 내가 정해주랴”고 답한다. 이 대사처럼 왕은 우유부단함과 모호함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무능한 신하들로 인해 안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청나라 병사들과의 싸움보다는 산성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산성을 둘러싼 청나라 병사들은 일정의 선을 넘지 않는다. 적으로써의 대상보다는 마치 목격자이며, 목표지점에 대기하고 있는 존재처럼 그리고 있다. 감독이 집중한 것은 고립된 상황 속에서 조선이 어떻게 안으로부터 무너지는가의 과정이라고 하겠다.
김훈은 소설 속에서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라고 표현했다. 황동혁 감독은 이것을 영상으로 옮겼다. 김훈 소설의 문장처럼 수사적 군더더기가 없고, 짧으며 단호하게 끊어낸다.
칼날 위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사는 소설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 영화는 소설 속 분위기를 화면에 표현하기 위해 장황한 서사를 생략하고 간결하고 상징적인 화면들로 채운다. 그래서 영화는 원작의 분위기와 인물 구도를 충실하게 구현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원작과 영화의 경계가 희미해지며 소설과 영화를 넘나든다.
삶과 죽음의 길, 살고자 하는 길에는 패배와 치욕이 있으며 죽고자 하는 길에는 명예가 남는다. 두 갈래의 길을 두고서 성안의 논쟁은 치열하고 뜨거워진다. 반대로 겨울은 깊어지고, 성안의 백성들은 한겨울 혹한 속에서 냉정하게 사지로 내몰린다.
위정자들에게 두 갈래의 선택이 치욕과 명예의 길이었다면, 백성들에게는 오로지 살고자 하는 하나의 길을 희망할뿐이었다. 마침내 최명길은 항복문서의 초안을 작성한다.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고 길입니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고 말하며, 성문 밖으로 난 길을 따라 최명길의 항복문서를 밟고 삶의 길을 가라고 간청한다.
그 길 위에 대장장이 서날쇠의 말처럼 “그 어느 편도 아닌” 자신과 가족을 먹이는 일이 중요한 백성들의 또 다른 삶이 이어지고, “지독한 겨울을 견뎌낸 자만이 봄을 맞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 길로 들어서기까지의 47일간의 뜨겁고 격정적인 이야기를 서늘하고 냉엄하게 그린다.
/(주)Engine42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