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나
한 입술이 한 입술과 겹쳐진다, 물뱀처럼 캄캄하다, 한 남자의 입술이 한 여자의 캄캄한 사랑을 누르고 있다
(….)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는 조금씩 사라졌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눈과 코를 지우고
형용사처럼 혀를 버리는 것
사라지는 여자의 눈썹이 서늘하다
어느 쪽이 슬픔의 정면인지
하루가 백년 같은 뜨거운 이마
당신과 내가 삼켜버린 낡은 입술들,
한 입술과 한 입술이 쌓인다,
고요하다 입술들은,
울음과 울음이 겹쳐진다,
캄캄하다
사랑 이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삶의 파괴를 가져올 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사랑. 이러한 사랑을 시인은 개기 일식으로 비유한다. 달의 그림자가 세계를 캄캄하게 만들듯이 여자의 입술을 누르는 남자의 입술은 여자의 사랑을 ‘캄캄하’게 만들고, 하여 그 입술의 겹침은 “울음과 울음”의 겹침으로 전화한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불붙는” 이 사랑은 “하루가 백년 같은 뜨거운” 격정을 고요하게 품고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