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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소녀

등록일 2021-09-30 19:58 게재일 2021-10-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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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천

(….)

사막에서 굶주린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 사진을 보라

이 소녀는 가난 때문에,

이미 하나의 예술 소재에 불과하다

소녀를 먹고 독수리가 사는 것 역시

자연의 법칙이다

(….)

베토벤의 교향곡은 허구여서 전파를 타고

소녀의 귀에 들리기도 했으리라

(….)

많은 사람들은 남을 돕기 전에

자신의 먹이를 주고 예술이라는 허구를 산다

우리들은 독수리의 상징 혹은 동업자인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 작가는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

 

이 시는 독수리와 소녀, 사진을 찍는 사진가, 쥐와 뱀과 빵과 베토벤 등을 여러 겹으로 겹쳐놓으면서 우리를 숙고하게 만든다. 시인은 사진가에게 휴머니즘적 비난을 하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은 시각에서, 소녀를 먹잇감으로 보는 독수리와 먹이를 주고 독수리를 상징화 한 예술을 만드는 인간을 대조하면서, ‘싶체’가 아닌 상징을 추구하는 인류 문화 자체의 ‘의미’와 현대 문화 전반의 정당성을 묻고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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