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포항의 변화를 사진에 담은 것은 작가로서 행운”

등록일 2021-09-26 19:45 게재일 2021-09-27 13면
스크랩버튼
이도윤  ①<br/>포항 정착과 사진작가의 길
이도윤의 ‘출어 준비’ 1979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힘에 겨운 듯했다. 선생님은 여든이 넘어 고관절 수술을 하는 바람에 1년 가까이 댁에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인터뷰를 제대로 할 수가 있을까 고민을 안고 중앙상가에 있는 선생님의 스튜디오(천연사진관)를 찾아갔다. 1년 동안 비워두었다는 스튜디오는 뜻밖에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깔끔한 양복을 걸친 선생님의 모습에서 꼿꼿한 작가 정신이 느껴졌다.

 

“부산에서 자형의 소개로 사진을 배웠어, 평생의 직업이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지

포항엔 1967년에 왔어. 조용하고 한적했지 동빈내항에 돛단배가 인상적이었어”

“포항은 짧은 기간에 엄청 변한 곳이야.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얼마나 변했나.

급속도로 개발되는 포항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사진에 담게됐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도윤 사진작가. /김 훈 사진작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도윤 사진작가. /김 훈 사진작가

조혜경(이하 조) : 경남 남해 출신인데 포항에 터를 잡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도윤(이하 이) : 사람 사는 곳이 어디 가나 비슷하지. 부산 용두산 아래 자형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용두산에 불이 나는 바람에 공원으로 바뀌었어. 그때 문득 내가 살아야 할 곳, 떠돌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느 누가 가라고 한 게 아니라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어. 포항, 경주, 안동, 서울 네 곳을 두고 고민했는데 기차를 타니까 포항이 불쑥 떠오르더군. 그래서 포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어. 돌이켜 생각해보면 경주도 괜찮은 곳인데. 이런 선택을 두고 운명이라 할 수 있을까. 여하튼 포항은 바다와 산이 있는 내 고향과 닮아 친근감이 들었어.

조 : 포항에 오신 게 언제쯤이지요?

이 : 1967년이지. 그때 포항 인구가 5만에서 6만 명 정도 되었나. 조용하고 한적했지. 동빈내항에 돛단배가 다닌 게 인상적이었어.

조 : 당시에 사진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 :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었어. 사진 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았고. 중학교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자형한테 간 게 사진을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 그때 자형은 한 백화점의 전무로 있었거든. 부산 서면에 크고 유명한 사진관이 여러 개 있었는데 어린 촌놈이 그 사진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을 보고는 신기하게 여겼지. 자형 소개로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배웠는데, 사진이 평생의 직업이 되리라고는 그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조 : 어린 나이에 객지 생활을 하셨군요.

이 : 그런 셈이지. 고향이 경남 남해군 상주면인데 남해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길이 멀었어. 상주에서 남해, 남해에서 노량, 노량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했지. 그때 아버지와 둘이서 남해읍까지 50리 밤길을 걸어서 갔어. 지금 생각해도 아득히 먼 길이지. 남해읍에서 아버지가 감 두 개를 사서 손에 꼭 쥐어주었어. 어린 자식을 객지에 보내려니 맘이 아파 국밥이라도 먹이고 싶은데 시골에 무슨 돈이 있겠어. 빈속에 배 타면 멀미를 할까 봐 걱정되었던 거지.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려.

조 :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만 예술가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선생님의 부모님은 어떠셨나요?

이 :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고 나는 6남매의 차남이야. 자식이 많으니 먹여 살릴 일이 큰 걱정이었고 농사일로 늘 바빴지. 아버지는 무뚝뚝하지만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분이었고, 해 뜨기 전에 논밭에 나가 일하던 어머니는 미인이었어. 동네에서 제일 곱고 참한 분이었고, 생전에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던 따뜻한 분이었지.

조 : 부산에 가보니까 어떻던가요?

이 : 덜컥 겁이 나더군. 이 넓은 곳에서 살 곳을 못 찾으면 미아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배는 고프지, 가방이랑 보따리를 메서 어깨는 내려앉지, 사람들은 숱하게 많지, 눈앞이 캄캄했어. 그 순간 손에 감 하나가 딱 잡히는데 배 타기 전에 아버지가 준 그 감인 거라. 한 개는 먹고 한 개는 남겨두었는데 그게 손에 몰캉 만져지면서 와락 눈물이 나더군. 이제 진짜 혼자구나, 내 길은 내가 알아서 가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울고 나니까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더라고.

조 : 다시 사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혹시 처음 사용했던 카메라는 기억하시는지요?

이 : 그걸 어떻게 잊어버리겠어. ‘캐논 큐엘(QL)’이 첫 카메라였지.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한 번 찍고 레버를 돌려야 다시 찍을 수 있는 것이었지. 초점도 렌즈 왼쪽에 초점 링을 돌려가면서 맞춰야 했고. 나중에는 ‘아사이 펜탁스’를 갖게 되었는데 꽤 비싼 카메라였지.

조 : 저는 어릴 때 예식장에 가면 사진사가 검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찍는 카메라가 기억납니다.

이 : 사오(4×5)판 뷰카메라를 말하는군. 검은색 주름상자로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인데 사용하는 필름이 사오(4×5)인치여서 그렇게 불렀지. 그 카메라는 렌즈에 셔터가 달렸어. 조명은 마그네슘 전구 조명을 썼고. 손에 전선을 감아쥐고 하나 둘 셋 하면 팡 터지는 조명이었지. 그다음에 셔터를 누르면 동시에 조명이 터지는 셔터 방식으로 바뀌었어. 그렇게 아날로그 카메라가 번성하다가 디지털로 바뀌었지. 나는 지금 디지털 카메라 캐논 5D를 사용하고 있어. 사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많이 발전했지. 과거처럼 온갖 고생하며 사진 하라고 하면 할 사람이 있을까 싶군.

조 : 요즘은 사진을 하게 되면 보정 작업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컴퓨터는 다루시는지요?

이 : 뒤늦게 대학에 다니면서 보고서를 내야 하니까 컴퓨터를 안 배울 수 없었지. 컴퓨터는 겨우 보고서를 작성하는 정도의 실력밖에 안 돼.

조 : 포항에 와서 사진관은 어디에서 열었습니까?

이 : 육거리였지. 1967년 새파란 총각 때 이야기야. 육거리를 중심으로 작은 상점이 올망졸망 모여 있던 시절이야. 그때 포항에 사진관이 대여섯 개 있었어. 대구사진관은 나루끝에 있었고, 포항사진관, 문화사진관, 태양사진관이 있었지. 다른 사진관은 기억이 잘 안 나는군. 사진관 주인들은 나보다 서너 살이 많았는데 다들 돌아가셨어. 세월이 참 무상하네.

조 : 사진관을 내면서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이 : 왜 안 힘들었겠어. 객지에서 왔으니 텃세가 있었지. 부산에서 사진을 배우고 왔기에 포항에서 사진 하는 사람들보다 아무래도 솜씨가 나았지. 그래도 어떡하나, 여기 있는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려고 애를 많이 썼지. 그러면서 사진에 더 빠져들었어.

조 : 사진에 빠져들었다는 말씀이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하군요.

이 : 우리 집 아이 둘이 어릴 때 이야기야. 하루는 둘이서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인형을 사려고 내렸는데 버스가 아이들을 못 보고 후진하는 바람에 사고를 내고 말았어. 버스 밑으로 들어간 아이들을 얼른 빼내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버스 기사는 운전대만 붙잡고 벌벌 떨고,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 다행히 아이들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놀라고 아팠겠나. 병원에서 다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아이들을 보고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묻지도 않고 그 모습을 담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댔지. 그 일로 아직도 가족들한테 한소리를 듣지. 나는 그런 사람이야. 그렇게 살아 숨 쉬는 사진을 고집했지.

조 : 살아 숨 쉬는 사진, 이 표현에 선생님의 사진관(寫眞觀)이 담겨 있지 않나 싶군요.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은 포항 사람들의 삶과 포항의 역사를 담은 사진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 사실 포항은 짧은 기간에 엄청 변한 곳이지.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얼마나 변했나. 내가 포항에 올 때만 해도 제철공장이 들어선다는 걸 몰랐어. 비밀리에 진행된 일이니까. 육거리를 제외하고는 개발된 곳이 거의 없었는데 포항제철이 세워지면서 급속도로 개발되었지. 그렇게 포항의 큰 변화를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작가로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지.

 

 

이도윤

1940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다. 1967년 포항에 정착하면서 사람들의 삶과 풍경을 사진에 담아왔다. 1973년 포항 맥심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2년 포항시립미술관에서 ‘그리운 포항, 사람들’이란 주제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프랑스 국제사진전 우수상, 아시아태평양 사진전과 유네스코 사진전 우수상, 중화민국 사진전 3회 입선, 대한민국 미술대전 2회 입선, 대한민국 사진대전 입선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포항지부장, 영상동인회 전국 회장, 선린대학·포항대학 강사 등을 역임했다.

대담·정리 : 조혜경(시인) / 인물 사진 : 김훈(사진작가)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