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
삼베는 수의의 옷감이다. 죽음의 색인 삼베빛은 바로 조팝꽃의 빛깔이기도 하다. 조팝꽃 무더기 속에서 시인이 털썩 주저앉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이렇듯 죽음 속에 쌓여 있지만, 초록 잎새들은 “들뜬 발자국들”로 “강마을 가득” 일어서고, 이에 더해 붉은 철쭉꽃들이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고 있다. 이로써 시인은 죽음의 시간 속에서 생명이 생성하는 시간이 싹튼다는 것을 새로이 인식한다. <문학평론가>
삼베빛 저녁볕, 자꾸 뒷덜미 잡아당긴다 어지럽다 (….) 종아리에 힘 모으고 겨우겨우 버티고 선 채 흐르는 강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산언덕을 덮는 조팝꽃처럼 마음, 몽롱해진다 낡은 철다리조차 꽃무더기 여기저기 토해 놓는 곳 거기 간이매점 대나무 평상 위, 털썩 주저앉는다 (….) 초록 잎새들, 팔랑대는 아기 손바닥들 바람 데리고 와 코끝 문질러댄다 쿨룩쿨룩, 삼베빛 저녁볕 잔기침하는 사이 강마을 가득, 들뜬 발자국들 일어선다 싸하게 몸 흔들며 피어오르는 철쭉꽃들 벌써 물속의 제 그림자, 까맣게 지우고 있다. -‘삼베빛 저녁볕’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