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일 ④<br/>포항시립극단 창단과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수상
포항에 시립극단이 창단된 것은 포항을 넘어 전국 연극계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포항시립극단은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상임 연출자인 김삼일 선생은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린다. 포항시립극단이 공연을 전면 유료화한 것도 문화계에서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중소도시 첫 시립극단 창단… 안정된 극단 운영을 위해 시립극단을 하게 됐지
1985년 제3회 전국연극제서 ‘대지의 딸’로 대통령상·이휘향 여자 연기상 수상
안강을 배경으로 경상도 사투리 등 단원들의 연극에 대한 열정 덕분이라 느껴”
“포항시립극단은 극단 ‘은하’와 합동공연을 하다 1991년부터 개별공연을 했어
상임 연출자로 활동하며 연극의 불모지 포항에서 연극 활성화에 큰 역할 했지”
헌 : 1983년에 포항시립극단이 창단되는데 그 의미가 간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 전국에서는 두 번째로, 중소 도시로서는 처음으로 시립극단이 창단됩니다.
김 : 어떻게 하면 극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시립으로 하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지. 지역에서 민간이 극단을 계속 끌고 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어. 사실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고. 신상률 선생과 내가 정충검 포항시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포항시립극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는데 다행히 정 시장이 수용해주더군. 그 점에서 정 시장에게 고맙지. 1983년 5월 ‘은하’를 주축으로 신상률 선생이 초대 단장을 맡고 내가 상임 연출을 맡아 민간 자율단체 성격의 포항시립극단이 탄생하게 된 거야. 덕분에 전국 여러 도시에서 시립극단이 생겼지.
헌 : 포항시립극단의 상임 연출을 맡으면서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김 : 1985년 6월 청주에서 열린 제3회 전국연극제에서 차범석의 ‘대지의 딸’을 연출해 대통령상과 여자 연기상(이휘향)을 차지했지. 포항 연극이 대단하다고 전국 연극판에 소문이 안 날 수 없었어. 사실 이 작품의 무대가 포항 이웃 마을 안강이거든. 배우들의 대사도 경상도 사투리였지. 지역 문화예술을 꽃피우고자 노력하며 지역과 관련된 주제에 천착한 결과였다고 봐. 1985년은 ‘은하’가 창단된 지 20주년이 되기도 했어. 그동안 기쁨도 있었지만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무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단원들의 연극에 대한 순수한 열정 덕분이라고 생각해.
헌 : 1989년에는 포항에서 제7회 전국연극제를 개최하게 됩니다.
김 : 감개무량한 일이었지. 이 연극제를 앞두고 포항시민회관은 700석 규모로 확충하고 조명과 음향도 신예화하면서 연극제 참가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어. 보름 동안 열린 연극제에서 ‘은하’는 차범석 작 ‘산불’로 연출상과 문공부장관상, 여자 연기상(황영란)을 차지했지.
헌 : 전국연극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어땠습니까?
김 : 연극제에 학생 4천여 명이 다녀갔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히 많은 숫자야. 포항에서 전국연극제가 열리고 ‘은하’가 큰 상을 차지하면서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지.
포항시립극단은 1990년까지 극단 ‘은하’와 합동 공연을 지속하다가 1991년부터 분리된 채 공연했다. 1990년 ‘노비문서’(백진기 연출), 1991년 ‘우리읍내’(신계호 연출), 1992년 ‘칠수와 만수’(이협수 연출), 1993년 1992년 ‘모닥불’(이원욱 연출), 1994년 ‘등신과 머저리’(류충렬 연출), ‘베비장전’(백진기 연출), 1995년 ‘어물전의 새벽’(이협수 연출), 1998년 ‘어머니’(이협수 연출) 등이다. 1999년 김삼일은 포항시립극단의 상임 연출자로 복귀하면서 그해 ‘작은 할머니’(엄인희 작) 와 ‘번지 없는 주막’(김상렬 작) 두 작품의 연출을 맡았다. 특히 ‘번지 없는 주막’은 30여 년 만에 새롭게 각광받은 악극 형식의 공연으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헌 : 2004년 제14회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의미가 컸겠습니다.
김 : 그렇게 볼 수 있지. 마침 환갑을 막 넘겼을 때 그 상을 받았으니. 방송 생활 때문에 공백기가 있었지만 포항시립극단 상임 연출자로 복귀하면서 매해 정기공연과 사실주의 연극, 해외 명작 공연 등 연극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였어.
‘조선일보’는 2004년 4월 1일자에 ‘이해랑 연극상’ 수상자로 김삼일이 수상한 이유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연극의 불모지 포항에서 상업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연극 열을 불태웠다는 점에서 지방 연극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수상 소식은 포항의 연극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헌 : 지역에서 연극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운 분은 없었는지요?
김 : 여러 사람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영일고등학교 최상하 교장을 꼽을 수 있지. 최 교장은 포항 연극의 숨은 공로자라 할 수 있어. 사실 연극인들은 무대를 준비하는 것도 벅찬데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홍보까지 해야 하니 오죽 힘들겠어.
그런데 최 교장이 어느 날 나를 부르더니 학생들을 직접 인솔해 단체 관람을 하겠다고 하더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거야. 이게 계기가 되어서 다른 학교에서도 단체 관람이 이어졌고 포항 연극계에는 큰 힘이 되었지. 최 교장은 단순히 연극인들을 돕기 위해 단체 관람을 이끈 게 아니라 학생들의 인성 교육에 연극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거야.
헌 : 공짜표와의 전쟁 선포, 포항 연극계에 이런 일도 있었다면서요?
김 : 당시 포스코는 국내 최고 수준의 효자음악당(현 효자아트홀)을 건립하고 서울의 유명 공연물을 유치해 무료 공연을 했거든. 포스코 직원들이나 시민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지. 하지만 지역의 문화예술계에서 보자면 심각한 위협이 되는 거야. 힘든 여건에서 분투하고 있는 지역 문화예술을 외면하고 지역 극단의 창작물을 도외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지. 이런 상황에서 2010년 하반기부터 포항시립극단의 공연을 전면 유료화했고, 그 결과 유료 관객과 입장 수입이 증가하게 되었어.
당시 ‘경북매일신문’은 ‘포항시립연극단 유료 공연 시행 1년’이라는 제목으로 포항시립극단의 성공적인 유료화를 다루었다.
“포항시립연극단(상임 연출 김삼일)이 지난해 11월 포항시립예술단 3개 단체(교향악단, 합창단, 연극단) 가운데 제일 먼저 유료화를 시행한 뒤 지난 1년 동안 유료 관객 1만 3천762명에 총 입장 수입 4천516만 원을 올려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특히 지난 11월 24일부터 12월 4일까지 포항시립 중앙아트홀(객석수 270석)에서 11일간 18회의 장기 공연을 한 셰익스피어 작, 김삼일 연출 ‘햄릿’은 4천64명의 유료 관객이 모여드는 기적을 연출하는 등 대성공을 거둬 시민들로부터 재공연을 해야 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경북매일신문 2010년 12일 20일자>
헌 : 공연을 전면 유료화한다는 것은 작품에 자신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요. 포항시립극단이 작품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맘때쯤 어떤 작품을 무대에 올렸습니까?
김 : ‘햄릿’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4대 비극과 ‘베니스의 상인’,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을 공연했지. 이 7대 작품을 20일에서 한 달까지 장기 공연했어. 포항시립극단 작품 공연 유료화와 함께 세계 고전 명작의 장기 공연 시대를 열었지.
김삼일
1942년 울산 출생으로 1963년 KBS 포항방송국 전속 성우 1기생이다. 1964년 대구에서 여러 연극인과 극단 ‘태백산맥’을 창단했고 ‘나는 자유를 선택했다’에 주인공 역으로 연극에 입문했다. 1965년 포항에서 극단 ‘은하’를 창단했으며 1983년부터 2012년까지 포항시립연극단 연출자를 지냈다. ‘햄릿’, ‘산불’, ‘원효대사’, ‘맹진사댁 경사’ 등 연극 160여 편에 출연하거나 연출을 맡았다. 2004년 조선일보 이해랑연극상, 2005년 MBC 제1회 홍해성 연극상, 2009년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연극상, 1985년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김삼일 자유소극장’을 운영했으며, 대경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대담·정리 : 김동헌(시인) / 사진 : 김훈(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