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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등록일 2021-08-30 20:07 게재일 2021-08-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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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태초에

하느님이 의자를 만들 때


그 곁을 달려가던


말의 영혼을 불어 넣었다


목뼈를 곧게 펴고


먼 곳을 바라보는 자세에


안장을 얹은 것도


하느님의 전직인 목수였다


사람들이


목뼈에 등을 기대고 돌아앉을 때


의자는


혼이 떠난 사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가끔씩 거꾸로 앉아 소리칠 때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의자에 깃든 말의 영혼은 눈을 뜬다

 


그때마다


어디선가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 들려온다

 


아이들은 사물을 그 사물의 기능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유로운 놀이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나아가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발동되는 상상력에 따라 그 사물과 자유로이 즐거우면서도 내밀한 관계를 맺는다. 시인은 이러한 아이의 상상력을 이어 받아 사물들이 살아 있는 동물-위의 시에서는 말-로 변신할 수 있음을 포착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물의 영혼 속에 스며들어 있는 생생한 신성을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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