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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을 만지는 밤

등록일 2021-08-24 18:23 게재일 2021-08-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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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혁

밤은 단단하다 낮부터 숨겨둔 이야기들 입안에서 깔깔하다 분명 자신의 그림자를 그림으로 남겨둔 고대의 풍습이 남아 있을 법도 하건만 말랑한 뉠 자리가 나온 이후로, 자리는 온갖 허물들의 지층만 쌓아 올린다 (….) 누워 있던 자리, 잊었던 것은 종종 피 묻은 몸으로 나타난다 모든 화석은 욕창을 앓는다 요컨대 뼈저림의 시작, 끄덕대며 기웃하며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내 성체(成體)는 석탄기나 데본기의 어느 지층에서 발굴될 듯하다 (….) 훌훌 불며 검붉은 물을 마시는 시간, 詩는 그때쯤 혀끝에 달라붙는 것 같다

 

우혁 시인에게 꿈꾸기란 피투성이 몸이 되는 것, 그 몸으로 얼룩진 며칠을 보내면서 “욕창을 앓는” 화석이 되는 일이다. 그 화석에 “오래 붙어 있던 허물들”을 털어낼 때 피투성이 몸의 속살이 드러나고, 그 살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물을 마시는 시간”을 갖게 되면 시가 그의 “혀끝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위의 시는 상처의 시간이 새겨진 내면의 화석을 발굴할 때 비로소 시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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