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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론

등록일 2021-08-23 20:14 게재일 2021-08-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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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개와 강아지는

나쁜 놈과 착한 놈만큼의 거리다

낮과 밤만큼이나 멀고도 가까운 사이

욕과 칭찬만큼이나 적대적인 관계

개는 부정어의 접두사

강아지는 사랑의 대명사

천한 것은 개

자식이나 손주처럼 귀한 것은 강아지

 

세상의 모든 강아지는

개를 빌려 세상에 나왔고

세상의 모든 개들도

강아지를 거쳐서 왔다

밤이 낮을 품고 낮이 밤을 품듯

우리는 하나다

 

비틀비틀 취객 하나가 내 옆을 스치며

“개새끼”하고 지나간다

 

불교의 ‘불이론’에 따르면 낮이 밤을 품고 밤이 낮을 품고 있듯이 상반되어 보이는 두 사물이나 상태는 ‘불이(不二)’다. 강아지는 개를 통해 태어났고 개는 “강아지를 거쳐서 왔다.” 그러니 취객이 시인에게 던진 ‘개새끼’라는 욕에 대해 시인은 개의치 않는다. ‘개새끼’는 욕이지만 사실 강아지를 지칭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새끼’라는 말 자체가 ‘불이론’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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