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
세계의 분주한 노동이 시작되었는데 당신은 잠을 자고 있네. 아이들이 겁먹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지하도의 행인들이 발로 툭툭 차고 가네
눈을 떴다 감아요, 아가씨여
그것은 오래된 시인의 주문 같네
(….)
두꺼운 잠의 녹색 담요 귀까지 덮어쓰고
눈을 감았다 떠요
고집 센 침묵의 아가씨여
그것은 어떤 세계의 한숨일까, 어떤 순간의 향기일까. 영원히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당신은 눈을 뜨고,
허공의 음부에서
태어나는 최초의 비명처럼
당신의 완고한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
미친 듯 춤추며 모퉁이 저편으로 달려갈 때
김수영은 ‘사랑의 변주곡’에서 역사적인 혁명들이 창출했던 기술이 한국의 일상에 스며들면서 일상의 삶을 사랑으로 변화시키기를 요청했다. 이기성 시인은 다시 혁명의 기술이 창출되기를 원한다. 마지막 연은 혁명이 일어나는 순간을 이미지화 한다. 이에 따르면 혁명은 허공에서 최초로 벌떡 일어나는 것, 광기를 머금은 강렬한 순간이자 예측할 수 없는 축제의 춤과 같은 순간이 혁명이 도래할 때의 특성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