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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삶, 시민 일상 속 ‘문화 돌봄’으로 사회를 잇다

윤희정기자
등록일 2021-07-25 19:36 게재일 2021-07-26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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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문화재단 추진 ‘문화안전망’ 의미와 전망
문화안전망 기획활동 등을 펼치고 있는 포항문화재단 민간 문화재생활동가 F5 워크숍 모습. /포항문화재단 제공

“이제 단순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한 문화 정책은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와 체험이 주는 행복감뿐 아니라 재난, 환경, 경제, 사회 전반의 위험 요소 속에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문화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법정문화도시 선정에 이어 문화로 사회 곳곳을 진단하거나 처방하고 시민의 일상 속 문화 실현을 위한 문화안전망 체계를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법정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적 돌봄 차원의 ‘문화안전망’ 사업을 선제적으로 시작한 포항문화재단의 설명이다. 포항시는 지난 2017년 규모 5.4 촉발 지진이 지역사회를 강타한 사건을 계기로 문화도시 사업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명확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안전망과는 다른 ‘문화’가 지닌 가치와 강점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연결망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포항문화재단이 추진 중인 문화안전망의 개념과 의미에 대해 진단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비해 우리가 준비할 것이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포항 문화안전망 사업 2017년 포항지진 발생으로 시작… 코로나 팬데믹 강타로 다양한 계층 확산

민간 문화재생활동가 발굴·양성 시민 일상 회복 위한 문화적 차원 고민· 다양한 접근 매뉴얼 연구

미취학 어린이 ‘문화돌봄교실’ ‘시네마 테라피’ ‘일상기록키트 방문 전달’ 등 다양한 성과로 나타나

지진·코로나 등 특수영역 넘어 시민 삶 전체 아우를 ‘포항형 문화안전망’ 구체적 시스템 구축 과제

문화안전망 기획활동 등을 펼치고 있는 포항문화재단 민간 문화재생활동가 F5 문화재생활동 프로그램.   /포항문화재단 제공
문화안전망 기획활동 등을 펼치고 있는 포항문화재단 민간 문화재생활동가 F5 문화재생활동 프로그램. /포항문화재단 제공

□위험사회, 일상이 멈추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가 어느덧 2년이 다 돼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물리적인 ‘거리 두기’만큼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작동이 멈췄다.

근래 우리 사회가 부르짖는 큰 가치 중의 하나인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 바이러스의 전염이 이 정도까지 우리 삶을 장악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위기는 우리 삶,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덮칠지 모른다는 것이다.

SF 소설가 제임스 호건은 그의 저서 ‘광장의 오염’에서 “새롭게 등장한 위험은 더이상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그로 인한 위험과 불안이 증대하는 위기의 일상화가 된다고 서술하고 있다.

또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위험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위험사회’란 현재형의 ‘위험한 사회가 아닌, 위험이 사회의 중심 현상이 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위험이 중심으로 작용하는 사회이며 위험을 결정하기 위해 늘 점검해야 하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21세기의 위험은 ‘danger’가 아니라 ‘risk’라고 규정하고 있다.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이 아니라 정체경제사회적인 환경과 결합돼 나타나는 재난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기술발전, 환경훼손, 경제사회 발전에 따른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이거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해킹, 미세먼지, 지구온난화, 플라스틱 폐기물, 남미와 아프리카의 자연파괴, 테러, 세계금융위기,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회, 세월호 사건 등 재난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이 많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포항지역만 하더라도 2017년 지진과 철강산업 다변화에 따른 지역 경제위기 등의 재난요소로 인해 시민의 삶을 위기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재난으로 인해 삶의 축이 흔들리면서 다양한 사회현상학적 패러다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불안한 미래로 인한 결혼과 출산 거부 등 솔로 사회가 만연화되고 있고 경쟁과 적대, 혐오의 시선이 사회적으로 팽배해지고 있다.

지난 8일 제주 서귀포에서 진행된 문화도시 정책포럼에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위험 요소가 만연한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은 삶과 인간이 도구화되지 않는 사회실현을 위해서는 사회적 모성 즉, 모두를 돌보며 상생하는 ‘사회적 돌봄’, ‘사회적 탯줄 잇기’의 필요성과 실천”에 대해 역설했다.

이처럼 재난, 환경, 경제, 사회 전반의 위험요소 속에서 사회적 차원의 안전망 시스템은 이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필수불가결한 논제가 됐다.

포항문화재단의 ‘재난 도시간 교류 포럼’ 모습.  /포항문화재단 제공
포항문화재단의 ‘재난 도시간 교류 포럼’ 모습. /포항문화재단 제공

□ 문화로 사회 곳곳을 진단 및 처방, 시민의 일상 속 문화 실현

문화안전망 사업은 2017년 포항에 지진이 발생되면서 시작됐다. 흥해지역을 중심으로 상당한 재산피해를 입었고 보상과정에서 주민사회의 갈등이 양상화되면서 가뜩이나 힘든 지역사회에 큰 상실감을 안겨줬다. 무엇보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주거지의 상실로 인해 우울감 등 심리적 방역이 뚫리면서 시민의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 법정문화도시 예비사업을 준비 중이던 포항시와 포항문화재단이 지진으로부터 상실된 시민의 일상복귀를 위한 다양한 문화적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문화안전망 사업의 출발이었다. 당시만해도 지진피해의 대책이 물리적 복구와 주민 피해보상 중심으로 진행되던 상황이었고 국내에서는 그동안 발생한 적 없는 초유의 재난사태라 그 어떤 사례나 문화적 연구가 전무했다.

무엇보다 시민의 일상 회복이라는 추상적이고도 담론적인 과제에 대해 ‘문화적 방식’이라는 명확한 개념 도출이 쉽지가 않았다. 다만 물리적 피해가 아닌 시민사회의 공동체 상실 등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진단과 회복의 실마리는 ‘문화’가 지닌 가치와 힘에서 결국 답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이 있을 뿐이었다.

문화안전망의 사업추진을 위해 지진 이후 시민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를 문화적 차원에서 고민하고 기획활동을 담당할 민간 문화재생활동가(F5)를 발굴하고 양성했다. 워크숍 등 역량강화 과정을 거친 이들이 각기 다른 시민의 관점에서 재난도시들과의 교류를 통해 포항에 적용할 프로그램 연구를 진행했다. 2019년 ‘재난 도시 간 유쾌한 어깨동무’ 포럼 개최 등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복구과정에서 활약한 민간활동가들과의 교류, 세월호 아픔을 겪은 안산과 지하철 참사를 경험한 대구 등 국내 재난도시들과의 교류를 진행하며 재난의 동질적 아픔을 공유하고 문화적 방식의 매뉴얼을 연구했다.

이후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적으로 강타하면서 포항 문화안전망 사업은 지진에서 나아가 다양한 사회적 범주로 확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재난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닥칠지 모른다는 일상적 관점에서 고민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생명존엄의 상실, 두려움, 불안한 미래, 우울감, 그로 인한 일상의 멈춤은 심각단계를 넘어 삶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문화안전망에 대한 방향 또한 시민 일상을 보다 확대한 다양한 계층 발굴과 사회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화 사각지대를 탐사하고 발굴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사회안전망 테두리 안에서 문화가 시민 일상에 밀도있게 연결돼 불안한 삶에서 안전한 삶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함을 다양한 시민그룹들과의 공론과정에서 도출됐다.

따라서 문화안전망은 문화로 사회 곳곳을 진단 및 처방함으로써 시민의 일상 속에서 문화를 실현하고, 공동체의 문화자치 도시의 문화주권을 강화함으로써, 문화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회 안전망의 하나다.

포항 문화도시 문화안전망 사업은 문화재생활동가 F5를 중심으로 집담회 등 다양한 시민그룹과의 소통과 공감프로그램을 통해 이뤄졌다. 시민의 목소리와 바람을 듣고 기록하며 그들에게 어떤 방식의 문화적 처방을 해줄 지에 대한 연구와 기획도 했다.

문화도시사업의 일환인 문화안전망 사업은 이와 동시에 포항문화재단 전 사업부서의 프로젝트와 연결해 코로나 팬데믹 사회에서 보다 다양한 시민들에게 문화적 소외가 없는 문화안전망 사업을 추진했다. 또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시민 일상을 아카이빙한 전시 ‘잃어버린 봄을 찾아서’, 코로나로 인해 등원을 못한 미취학 어린이를 위한 ‘문화돌봄교실’, ‘시네마테라피’, ‘일상기록키트 방문 전달’‘예술인창작지원’ ‘시민커뮤니티 발굴 및 거점공간 지원’ 등이 대표적인 사업들이다.

 

포항문화재단이 지난달 개최한 ‘제1회 문화안전망 포럼’.  /포항문화재단 제공
포항문화재단이 지난달 개최한 ‘제1회 문화안전망 포럼’. /포항문화재단 제공

□ 명확한 개념 설정, 입체적이고 빈틈없는 촘촘한 안전망체계 구축해야

지진과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재난이라는 국소적인 접근에서 출발한 포항문화안전망 사업은 이제 시민의 삶 전체 영역을 아우르는 문화연결망 구축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안전망’의 보다 명확한 개념 설정과 구체적인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지진과 코로나라는 특수한 영역을 넘어 모든 시민에게 보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포항형 문화안전망에 대한 구체화된 매뉴얼과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구조의 재편에 따라 포항제철 설립을 중심으로 유입된 인구층과 포항 1세대 은퇴인구, 직업으로서 유입됐지만 정서적으로 안착되지 못한 외부유입층, 매연과 공장 굴뚝에 휩싸여 정서적 여유로움을 보장받지 못한 공단 근로자 등 산업화 중심의 성장구조에서 발생한 문화적 소외 계층, 도농공산어촌의 도시특성, 특수한 상황에 놓인 개별 맟춤형에 이르기까지 입체적이고 빈틈없는 촘촘한 진단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문화기본권에 기초한 시민의 문화 권리적 측면에서 다양한 시민층과의 논의의 과정을 통해 시민의 삶과 문화를 연결하는 제도화된 문화안전망 시스템 구축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법정 문화도시사업을 추진 중인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단은 올해 시민포럼의 주제를 ‘문화안전망’으로 설정하고 총 4회에 걸친 포럼을 통해 시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어 ‘포항형 문화안전망 구축’을 위한 토대 마련에 나섰다. 시민논의 과정을 거친 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문화안전망이 실효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포항문화재단 관계자는 “문화기본권적 측면에서 시민의 고른 문화적 향유가 이뤄질 수 있는 문화안전망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문화생태 조성을 위해 더 촘촘한 문화연결망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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