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사건의 재구성 <br/>빌린 돈 안갚아 지인에 고소 당한 30대, 법원 “사기죄로 볼 수 없다”<br/>채무 발생 당시 변제 의사와 능력 재판의 중요 요건으로 작용해
지난 6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1호 법정에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한 A씨(38)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지인에게 5천만원을 빌린 후 이를 갚지 않았다면서 A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형법 제347조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기망과 이익이 사기죄 성립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재판 과정에서 다툼의 요지는 ‘의사’였다. 지난 2019년 2월 19일, A씨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B씨에게 월 4.5%의 이자를 지급하고 1년안에 원금을 갚겠다는 조건 하에 사업자금 5천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이 돈 중에서 상당 부분을 C씨에게 빌려줬다.
검찰은 A씨가 빌린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애초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A씨는 약 1억1천만원의 채무가 있었고, 지난 2018년 4월부터 A씨의 자산은 채권자들에 의해 압류된 상태였다. 또 월세 1천500만원이 연체돼 아파트 보증금에서 차감되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재판을 맡은 포항지원 형사1단독 최누림 부장판사는 우선 돈을 빌려준 B씨 진술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객관적인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B씨는 고소장 등을 통해 ‘A씨가 자동차용품 구매를 위해 급하게 1천만원을 빌렸다’고 했다. ‘사업을 위해 5천만원을 빌렸다’는 공소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다.
검찰의 주장과 달리 빌린 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더러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최 부장판사는 설명했다. A씨는 B씨에게 자신의 아내 소유의 아파트를 차용금 담보로 제공해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 “변제 능력이 없다”는 근거로 검사가 내세운 ‘1억여원의 채무’도 당시 A씨에게는 개인 및 물품대금과 임대차보증금 등 채무와 비슷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채권이 존재했다고 반박했다.
최누림 부장판사는 이날 사기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후 A씨에게 “죄는 성립되지 않았지만, 돈은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바름기자 bareum90@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