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없을까?

등록일 2021-06-03 18:40 게재일 2021-06-04 18면
스크랩버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 사기꾼들이 궁궐 앞에서 “우리는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을 짭니다”라고 외친다. 사기꾼들은 베틀을 놓고 옷 짜는 시늉만 하다가 드디어 옷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임금 앞에서 옷을 입어보라고 했다.

임금의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았지만 바보가 되긴 싫었다. 눈치를 보는 신하들은 보이지 않는 옷을 두고 온갖 아양을 떨었다. 의기양양한 임금님은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활보했다. 감히 한마디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한 어린아이가 외쳤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최근 착공식이 열린 한전공대가 대표적으로 이런 경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호남 표를 의식해서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대통령이 된 후 밀어붙인 경우인데 주변의 누구도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

취학 인구 감소가 본격화하면서 5년 내 전국 대학의 4분의 1이 문을 닫아야 할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공기업을 이용하여 대학을 새로 짓겠다고 하는 것인데 이미 전국 주요 대학에 에너지 관련 학과가 있고,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여러 개 있는데, 또다른 특성화 대학을 만든다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하고 주변에서 바른말을 했어야 했다. 한전공대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면 좀더 신중하게 공청회 등을 거치고 학계의 의견을 수렴했어야 하고 시간을 두고 진행해도 되는데 졸속 진행되는 것은 정치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공약이나 말 한마디가 헌법이고 법률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과거 왕권시대나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최근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책들이 수시로 바뀌고 있고 무리하게 일들이 추진되고 있는데,“벌거 벗었다”고 용기있게 말하는 관료는 전무한 상태이다. 정부 정책은 합리적이고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국민에 대한 배임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진정 위하고 국민의 의견이 수렴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그런 안정된 국가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저 정치인들의 인기전술에 그리고 대통령의 공약과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 되는 현 내치 형태는 정말로 걱정스럽다.

그런데 왜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바른말 하는 그런 용기있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합리적 사고에 의한 사회, 경제, 정치상황을 판단하여 직언을 할 수 있는 양심있는 관료가 절실히 요구된다.

포스텍 명예교수들이 한전공대를 한번 방문하는 기회를 가지는 게 좋겠다.

그리고 이제 시작된 한전공대에 직언을 해주어야 한다. 포스텍은 정치적인 전략으로 세워진 학교가 아니다. 서울 아닌 지역에 진정 세계적인 연구 중심대학을 만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지어진 학교이다. 이 경험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벌거벗었다”라고 우린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옷을 입혀주어야 한다.

서의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