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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보훈입니다”

김락현기자
등록일 2021-05-31 20:22 게재일 2021-06-0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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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을 맞으며…  칠곡평화분수 찾은 6·25 전쟁 낙동강 방어선 전투 참전 조석희 옹<br/>참전 용사들 보급품 부족해<br/>하루 주먹밥 한 덩어리에<br/>가마니로 이불 삼는 참상 속<br/>아사·동사자 무더기로 속출<br/>국가는 당사자·유족에 대한<br/>명예회복·보상 책무 다해야
지난달 30일 칠곡평화분수를 찾은 조석희옹이 6·25전쟁 당시를 회상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칠곡군 제공
“호국보훈의 달인 6월 만이라도 먼저 간 전우를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에 100세를 바라보는 노병이 호국과 보훈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전투에 참전했던 조석희(96·칠곡군 석적읍)옹이 그 주인공.

지난달 30일 칠곡평화분수를 찾은 조옹은 경쾌한 물줄기와 화려한 음악을 즐기는 관광객 사이에서 분수 옆 낙동강만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칠곡평화분수는 칠곡군이 참천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6·25전쟁을 상징하는 62.5m 길이의 분수대에 55일간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상징하는 55m의 고사분수 등 10가지 모양을 갖추고 있다.

조옹은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경찰관’과 ‘국민방위군’이라는 두 가지 신분으로 참전한 특이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할 당시 35세였던 그는 고향인 칠곡군에서 경찰관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국토의 95%를 북한군에게 내어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였기에 경찰관 신분으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우며 고향을 지켜냈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국군의 승리로 기울고 인천상륙작전으로 통일을 눈앞에 두자 조옹은 경찰관을 그만뒀다. 전쟁 트라우마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중공군으로 인해 이내 물거품이 됐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다시 국민방위군에 입대했다.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통과된 ‘국민방위군설치법’에 의해 만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제2국민병으로 조직된 군대이다.

조석희옹은 “국민방위군은 보급품이 부족해 하루에 주먹밥 한 덩어리로 배를 채우고 가마니로 이불을 삼는 참상 속에서 아사자와 동사자가 무더기로 속출했다”며 “하루빨리 당사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통해 국가가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벌어졌던 칠곡군은 호국과 보훈을 기리는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풍조가 지속되면 과연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겠냐”면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보훈이다. 호국보훈의 달 만큼이라도 전장에서 이슬로 사라진 전우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칠곡/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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