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31일부터 제2차 생활 속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실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불필요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순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란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한가지’와 ‘하지 않을 일 한가지’를 약속하는 내용을 ‘~고 ~고’ 운율에 맞춰 SNS에 올리고 후속 주자를 지목해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텀블러(개인컵) 및 다회용컵 사용 생활화하기 △비닐봉지 아닌 장바구니(에코백) 사용하기 △음식 포장 시 다회용 용기에 담아가기 △음식 배달 주문시 안 쓰는 플라스틱 거절하기 △플라스틱 빨대·막대 사용 줄이기 △음료 구입 시 무라벨 제품 우선 구매하기 △온라인상품 주문은 모아서 한꺼번에 하기 △과도하게 포장된 제품 소비 줄이기 △포장안한 상품 구매하기 △세탁비닐 등 불필요한 비닐 사용 줄이기를 통해 생활 속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리필 스테이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세제, 바디워시, 향수, 식품 등을 포장재 없이 내용물만 판매하는 매장을 ‘리필 스테이션’이라 부른다. 이곳을 찾은 소비자는 제품을 매장 전용 용기에 담거나 아예 직접 용기를 가져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다.
‘리필 스테이션’이 활성화된 유럽국가에서는 화장품을 소분해 판매하는 것에 대해 별도의 자격을 요구하거나 규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세제, 섬유유연제 등 세탁제품만 리필을 허용할 뿐이다.
샴푸와 바디워시 같은 세정용 제품은 리필이 불가능하다. 세정용 제품은 ‘화장품’에 해당함에 따라 개인 용기에 덜어서 판매하려면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라는 자격증 소지자가 매장에 상주해야 한다는 법 규정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에 대해 “세정용 제품을 개봉해 나눠 담는 과정에서 변질 또는 오염될 가능성이 있어 전문적으로 관리할 인력을 두도록 한 것”이라며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제3회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시험’이 시행됐다. 응시자 4천353명 가운데 314명이 합격했다. 고작 7.2%의 합격률이다. 앞선 2회 시험 때도 합격률은 10.1%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웠다.
탈플라스틱을 위해 소분해 팔고 싶은데 합격률 10% 안팎인 ‘국가고시’ 같은 시험까지 통과해야 하나? 샴푸, 바디워시를 단순히 덜어서 판매하는 것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인가?
환경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 표시제를 도입했다. 소비자에게 알 권리를 보장하고 생산자가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생산자는 포장재 재질에 대한 평가결과에 따라 ‘재활용 최우수’, ‘재활용 우수’, ‘재활용 보통’, ‘재활용 어려움’ 등으로 구분해 표기해야 한다.
하지만, 화장품 회사에 대해선 예외를 뒀다. 화장품 업계가 재활용 등급 표시에 따른 이미지 실추 및 수출 경쟁력 저하 등을 내세워 표시 예외를 요청하고, 포장재를 역회수하는 협약으로 ‘재활용 어려움’ 표기를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화장품만큼 플라스틱 용기의 사용이 많은 제품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혜 소지가 다분하다. 화장품 회사는 이런 특혜성을 등에 업고 탈플라스틱에 노골적으로 역행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2018년 회수된 공병을 재생원료로 사용했지만, 출고량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즉 99%는 재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자 정부가 화장품 회사의 ‘등급 표시 예외 적용’ 방침을 철회했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다. 재활용되지 않는 용기를 사용하면서 등급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소비자를 기만한 것이요, 이를 가능하도록 예외를 적용한 환경부는 화장품 업계에 면죄부를 준 것이 때문이다.
필자도 ‘탈플라스틱 챌린지’에 지목을 받았다. ‘일회용품 줄이Go!, 다회용품 사용하Go!’란 문구를 SNS에 올리고 첼린지에 동참했지만 마뜩지 않다. 국민들은 탈플라스틱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다회용 용기의 상용화나 일회용기의 재활용은 제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환경부가 이를 우선적으로 보완하고 해결책을 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선진국들의 모범 사례과 국민 의견수렴으로도 도입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많을 것이다. 본연의 역할을 잊은 채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환경부를 보고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할까? 기업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일상에서 실효성있는 정책으로 국민에게 박수받는 환경부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