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머리 앤 카페에서 모였다. 오늘 토론할 책이 ‘빨강 머리 앤’이기에 이리로 정했다. 월포해수욕장에 자리 잡은 이 카페 이름은 ‘커피선’이지만 가게 안에 온통 앤의 굿즈들이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입구부터 여행 가방을 든 앤의 까만 실루엣이 우리를 반긴다. 가방 안에 커피콩이 가득 들었다.
빨강 머리 앤 애니메이션은 나보다 열 살 어리다. 캐나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1908년에 글로 탄생시킨 것을 일본 후지 TV에서 그림으로 우리에게 펼쳐놓았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주인공의 모습을 삽화로 책에 그려 넣어 출판했기에 세계 어느 곳에서 읽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노란 머리의 빨간 마후라를 한 어린 왕자의 모습으로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그 역할을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에게 했다. 이 카페에는 그 앤의 모습이 가득하다.
고아 소녀가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초록 지붕의 커스버트 남매의 집으로 오는 장면이 소설의 첫 장면이다. 소심한 모태솔로 매튜 아저씨의 마차를 타고 사과꽃이 흐드러진 가로수길을 지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고작 200미터 정도의 길이인 김유신 묘 입구가 벚꽃길의 최고 명소인데, 500미터가 이어진 길이라고 하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수다쟁이 앤이 한동안 가슴이 아픈 듯 먹먹해서 입을 다물만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빨강 머리 앤을 왜 독서토론까지 하느냐고 물었다. 고전이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란 농담이 있다. 그 농담에 다 같이 웃는 것은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단 제목과 줄거리는 들려오는 풍문으로 들어 알고, 두께가 주는 중압감과 바쁘다는 핑계로 거실 책장에 비싼 장식품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빨강 머리 앤은 술술 읽기 쉬우니 다들 읽었겠지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어릴 적 TV에서 방영한 것을 보았을 뿐 원작을 읽지 않았다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2021년 토론 목록에 명작읽기 코너를 만들고 키다리 아저씨와 빨강 머리 앤을 넣었다.
나는 드라마도 새로운 것보다 좋았던 것을 몇 번 더 우려서 보는 곰탕 스타일이다. 처음 볼 땐 스토리 위주로 보고 두 번째엔 캐릭터가 보이고, 서너 번 더 보면 처음에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은 느낌이 들고 처음엔 들리지 않던 대사가 살아서 귀에 꽂힌다.
빨강 머리 앤도 이번에 읽으니, 몽고메리가 그 시대 사람들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 곳곳에 있었다.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는 그리스도’라는 석판화를 보고 앤이 화가가 예수님 얼굴을 저렇게 슬프게 그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의 많은 예수님 그림이 전부 저래요 한다. 아시아에서 태어난 예수님이 백인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부터가 아이러니다.
앤이 처음 교회 간 날, 장로님은 기도하는 게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하나님이 너무 멀리 계셔서 기도를 드려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나도 늘 앤처럼 느끼던 바라 그 문장이 도드라져 보였다. 지난해인가, 우리 교회 장로님 중에 한 분의 기도가 진심처럼 느껴진 날이 있었다. 그 장로님은 자신이 담근 젓갈이 잘 익었으니 예수님이 오셔서 맛보고 가셨으면 좋겠다, 베란다 화분에 난이 꽃을 피웠다며 향기로운 예수님 생각이 난다고도 했다. 사실 많은 기도가 귓가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는데 비해 예수님을 가까이 사는 친구처럼 대하는 그 기도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앤이 그려진 벽화 아래서 토론은 점심때가 지나도록 이어졌다. 카페를 나오기 전 굿즈 하나씩도 사서 나왔다. 우리 집에는 작은 시계를 들고 선 앤의 옆모습 나무인형을 데려왔다. 그동안 책꽂이 한 칸을 채울 만큼의 다양한 앤을 데려 왔지만, 앞으로도 쭉 들일 참이다. 새로운 번역이 나오면 사서 또 읽고 밑줄을 그을 것이다. 덕질의 즐거움이 이런 것일 테니.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