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포항 근·현대 문화사’와 KBS

등록일 2021-04-25 19:31 게재일 2021-04-26 18면
스크랩버튼
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
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피에르 르고프는 공동체로부터의 배제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모든 곳에서의 일상의 질서가 되어 맹목적 현대화라는 형태로 사회적 관계의 중심에 설치되는 현상을‘부드러운 야만(la barbarie douce)’이라고 부르며, 그 어떤 것도 평온 상태에 놓여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 전복의 메커니즘을 비판했다. IT산업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유니버스와 메타버스(Metaverse)의 공존을 목도하며 디지털 노마드로서 불안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위무해 주고 긍정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문화향유권을 환기시키고자 포항문화원에서‘포항 근·현대 문화사’를 발간했다. 포항 문화의 변천사를 190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12개의 주제로 나눠 집필한 역작인데,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방송국의 역할과 지역문화’에 대한 평가이다.“1961년에 첫 전파를 쏜 KBS포항방송국의 라디오방송은 방송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발전을 견인하는 일을 해냈다. 제대로 된 문화예술단체나 변변한 예술공간조차 없던 시절에 전후 황폐한 포항을 KBS가 추슬러 문화도시로서의 초석을 다졌고, 방송국 직원들은 스스로 예술단체를 결성하고 활동하면서 전파를 쏘는 등 척박한 토양에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중략) 지역 문화단체도 채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의 연극, 음악, 희곡 등 장르를 총괄해 주도적인 문화예술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성실히 수행해 냈다.”

이러한 평가는 IPTV나 OTT 기반의 유료방송인 유튜브, 웨이브, 넷플릭스 등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운영되는 KBS의 존재 의미와 나아갈 길을 천착하게 한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상업성과 타협하지 않으며 수십 년간‘아침마당’,‘6시 내고향’,‘전국노래자랑’,‘열린음악회’등 여러 장수 프로그램을 제작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시청자들의 인생 동반자로서 방송문화를 향유하게 하고자 하는 사명감과 오랜 시간을 관통하며 삶의 궤적에 합치하는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시대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의 층위를‘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를 통해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으로 나눠 설명했는데 스투디움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피상적 평범함이라면, 푼크툼은 무엇인가 가슴을 자극하는 본질적 경험과의 결합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방송 KBS 채널에는 뉴미디어 등의 다른 매체에서는 보기 힘든 수많은 공익적 프로그램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시청자 개개인의 푼크툼적 시대 경험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애자일(agile) 조직화가 화두인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시간을 갖고 함께 모일 수 있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역할을 하며 시대적 과제로서의 지역균형발전 등을 추구하는 가운데 문화발전의 한 축이 되어 시청자들의 벗이 되는 것이 KBS포항방송국의 책무이다.

특별기고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