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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 시대의 도시

등록일 2021-03-14 20:09 게재일 2021-03-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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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식 <br>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
윤대식영남대 교수·도시공학과

코로나 사태가 벌써 1년을 넘기면서 시민들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고, 도시의 모습 역시 다양하게 변하고 있다. 시민들의 이동을 위한 교통수요는 크게 감소했으며, 특히 대중교통수요가 크게 줄면서 도시철도와 버스는 깊은 적자운영의 늪에 빠졌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와 배달주문의 활성화로 물류와 택배는 증가하고, 언택트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재택근무의 증가로 말미암아 주택이 주거기능뿐만 아니라 사무공간의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들은 재택근무의 영향으로 대도시 ‘엑소더스’와 함께 임대료가 싸고 주거환경이 좋은 교외지역으로의 주거이전도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위드(with)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도시 모습들이기는 하지만, 코로나 사태와 관계없이 이미 오래전에 많은 미래학자가 전망했던 도시의 모습들이기도 하다. 최근 수십년 사이에 가장 획기적인 기술혁신과 실용화가 이뤄진 분야가 정보통신기술임에 반해, 획기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영역이 많은 분야가 바이오(의료)기술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상기한다면 요즈음 우리가 겪는 위드 코로나 시대 도시의 모습들은 현재의 정보통신기술과 바이오(의료)기술의 수준을 매우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들은 미래학자들이 전망했던 것보다 좀 더 빨리 우리에게 다가왔을 뿐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큰 변화는 모임(집합)과 이동의 통제로 인한 전반적인 교통수요의 감소와 버스와 도시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의 이용 기피이다. 따라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 대량수송 위주의 교통정책에서 탈피해 시민들의 보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교통정책으로 전환이 불가피하다. 결국, 효율성 위주의 교통정책에서 벗어난 다른 가치와 목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아울러 증가하는 물류와 택배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고, 비대면 택배 송수신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

한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재택근무의 증가이다. 평소에는 재택근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졌던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재택근무의 새로운 가능성을 살펴볼 기회를 이번에 가지게 된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많은 직장인에게 주택은 단지 퇴근 후 잠시 쉬고 잠만 자는 공간에 불과했으나, 재택근무를 하면서 주택이 사무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재택근무로 인해 통근 대신 통신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고, 인간관계의 중심도 직장에서 주거지역과 온라인 커뮤니티로 변하고 있다. 재택근무와 전자상거래의 증가로 주거공간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상업시설의 공간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주택은 주거공간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워크스테이션(work station)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게 되면서 주거입지 패턴 및 주택의 실내공간과 주거단지의 구성에 대해서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도시의 주요 기능도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판매의 장소에서 벗어나, 문화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교류의 장소로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거주공간은 분산된 집중의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처럼 예견되는 전망을 바탕으로 도시공간의 재구조화(restructuring)가 필요하다.

도시는 유기체(有機體)이다.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진화할 수도 있고 사멸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도시의 흥망성쇠는 사회적 재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좌우됐고, 도시계획 사조(思潮)와 제도도 사회적 재난을 겪으면서 변화했다.

서구(西歐)사회에서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에 대한 입법은 대부분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대량 이주해 들어오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비위생적이고 불량한 주거환경 개선에 초점을 뒀다. 도시 저소득 노동자들의 건강과 위생 상태에 대한 관심은 사실상 19세기 초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영국의 ‘공중위생법’(Public Health Act) 등의 보건 및 위생 관련 입법조치들은 상하수도, 도로포장 등에 대한 규정을 포함함으로써 근대적 도시계획 입법의 선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도시계획의 집행수단인 용도지역제(zoning)도 사실은 주민들의 위생과 보건에 관심을 두고 만들어진 제도이다. 16세기 스페인의 필립(Philip) 왕이 신세계(개척지)에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때 길은 바람에 휩쓸리지 않는 방향으로 내도록 하고, 도살장은 주민들에게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도시의 외곽지역에 입지시키도록 명령한 것이 용도지역제의 초기 시도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도시는 새로운 진화를 모색하고 한다. 이제 전염병을 비롯한 사회적 재난에 강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도시는 유기체이고, 언제든지 사멸할 수도 있고 진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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