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지 가야지 하며 못 가 본 곳이었다. 경주에 터를 잡은 선배를 만나러 갔던 날, 늦은 점심을 먹고 어디로 갈까 하길래 관광객은 모르는 곳에 데려가 달라 했다. 그랬더니 데려간 곳이 선도산이었다. 꼬불꼬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동네 골목길을 따라 오르니 도봉서당이 나타났다. 오후의 햇살이 산으로 둘러싸여 우묵한 곳에 자리한 탑을 비춰 주고 있었다.
주차장 위로 닥나무가 훤칠하니 서 있었다. 그 옆에 삼층석탑이 우두커니 섰다. 문화재에 대해 모르는 이가 보기에도 탑의 모양이 어딘가 이상했다. 문화재 안내판의 내용을 읽어보니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도 석공의 기술이 다 좋지는 않았나 보다. 오늘의 목적이 이 탑이 아니었으니 해지기 전 서둘러 산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동네 이름이 서악이다. 서쪽에 있는 돌산이라는 뜻이니 저 산 어딘가에 돌을 숨겨놓았을 것이다. 선배가 마애삼존여래입상을 보여주겠다며 소나무 오솔길 사이로 난 임도로 우리를 안내했고,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 길을 무작정 따라 올랐다. 처음 걸을 땐 등산 초보자도 걸을 만했는데 그늘이 없어지고 가파른 길만 계속되니 30분 만에 산멀미가 찾아왔다. 어지러워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해 아쉽지만, 운동 열심히 해서 다시 오자하고 삼존불은 보지 못 하고 발길을 돌렸다.
내려올 때는 숨이 덜 차,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소나무 숲에 가만히 엎드린 능이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라 십여 개의 능이 삼층탑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모습이었다. 능 사이로 걸었다. 경주는 어디를 가나 능이 보이는 곳이다. 거리에 붙은 출산장려정책 포스터에도 능과 임산부의 불룩한 배를 형상화해서 천년을 이어온, 천년을 이어갈 책임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었다.
하지만 능을 이렇게 가까이 돌며 걸을 수 있는 곳이 몇 안 된다. 위에 능부터 주인의 이름을 보니 그 유명한 진흥왕릉이었다. 화랑도를 국가조직으로 공인하고, 황룡사 건립하여 신라의 국력 과시. 한강 유역 모두 장악, 대가야 병합, 함흥평야 진출 등 신라 최대의 영토를 개척해서 진흥왕 순수비를 곳곳에 세운 왕이다. 그 밑에 진지왕, 문성왕, 헌안왕의 능이 차례로 있어서 사이를 오가며 내려왔다. 그 끝에 바위에 구멍이 뚫린 청동기 유적도 있어서 아이들과 와서 보면 좋을 곳이었다. 다만 신라 시대 능 옆에 번듯하게 비석이 놓인 조선 시대 묘가 있어서 이건 뭐지 싶은 풍경도 있다.
네 개의 왕릉 맞은편에도 그 안에 누가 누운 자리인지 모르지만, 능이 십여 개 더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산책길 중간중간에 벤치가 놓여있으니 두런두런거릴 수 있어서 더 좋은 소풍 장소였다.
이곳에 다녀온 후 만나는 이마다 산책할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진흥왕릉에 가 보았냐고 물으니 다들 그 아래 무열왕릉은 알아도 진흥왕릉이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하던 H가 “여기 가을에 구절초 축제하는 거기 같은데.” 한다. 예전엔 삼층탑 앞에 절이 있어서 사람들을 불러들였을 테지만 지금은 봄에 작약꽃을 피워서, 가을엔 만발한 구절초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이끈다. 꽃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면서도 소나무 사이에 엎드린 능을 알아채진 못했던 것이다.
몇 해 전, 독서회 회원들과 옥산서원에 봄 소풍을 갔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옆에 끼고 서원을 향해 걷는데, 한 회원이 여름마다 아이들 데리고 물놀이 왔던 곳이라며 화들짝 웃는다. 나두나두 하며 두 명이 합세했다. 매 해 물놀이를 하면서도 서원 건물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재가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오월이 오면 작약을 보러 한 번, 시월에는 구절초를 만나러 또 한 번 서악동에 가야겠다. 꽃과 함께 소나무 숲에 엎드린 능의 주인들과 역사 이야기도 나누면서 산책길을 돌아야겠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