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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신건강은 안녕하십니까?

등록일 2021-02-07 20:16 게재일 2021-02-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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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br>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왜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했어요?” 정신건강의학과를 택한 나의 탁월함과 위대함(?)을 기대했을까? 아니면 ‘오죽하면 정신건강의학과를 택했을까’ 하는 위로와 동정심(?)이 내포되어 있을까?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묻고 싶어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정신건강은 어떻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내과 의사의 신체건강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정신건강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은 무슨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가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 대한 생각들 중 하나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매일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만 상대하면 일종의 직업병처럼 의사도 환자와 비슷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우울증 환자를 계속 대하다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우울해지지 않을까?” 또는 “불안증 환자를 계속 대하다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불안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또는 “의사의 정신상태가 환자와 비슷해져야 치료가 더 잘되지 않나?”하는 생각도 있다.

마약 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마약 중독자를 상대하므로 일종의 직업병처럼 의사도 마약 중독 상태가 되거나 또는 환자 치료를 더 잘 하기 위해 마약 중독자가 되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참고로 마약 중독의 치료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한다.

또 한편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족집게’ 점쟁이나 역술인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황혼 이혼’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즈음의 일이다. 어떤 할머니가 진료실에 오셨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귀가 어두워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나 싶어 내가 큰 소리로 다시 물어 보아도 역시 아무 말이 없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생각하던 할머니가 던진 한마디는 “그걸 말하면 되나? 치료비를 받으려면 묻지 말고 맞추어야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혼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점을 보러 가는 대신에 정신건강의학과로 왔다는 사실을 파악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진료 후 “가슴에 얹혀 있던 돌 하나를 내려놓은 것 같다”며 밝은 표정으로 병원을 나섰던 그 할머니, 몇 달 후 부군과 잘 지내고 있다는 말씀으로 보아 점을 보러 가는 대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찾은 점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초능력자로 보는 이런 에피소드는 그리 드물지 않게 겪는 일이다. 일상의 만남에서 대화를 잘 나누다가도 내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줄 알고 나면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까봐 입을 굳게 다무는 분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도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초능력자도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완전한 정신건강의 소유자도 아니다. 나는 환자를 만나면서 그 속에서 나 자신의 미숙함을 본다. 나의 건강하지 못한 점을 본다. 그 속에서 깨우친다. 그리고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우리 모두 완전한 정신건강의 소유자는 아니므로,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 환자이다.

그렇다면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문해본다. 굳이 말하자면,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부처님, 예수님 같은 성인들은 완전한 정신건강을 가진 분들이겠지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그런 경지에 도달하기란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재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자신의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점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인격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정신건강이다. 건강을 찾고 지키려는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정신이 건강해 질 수 있을까? 나는 정신이 건강해지는 그 출발점은 자신의 인격 성숙이 완전하지 못함을, 다시 말해 자신의 인격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완전한 인격 성숙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우리의 정신은 더 나은 성장을 위한 여백이 남아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인가! 누가 잘난 것도 없고 누가 못난 것도 없다. 기껏해야 ‘오십보 백보(五十步 百步)’이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남과 비교한 성공이 아닌,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 자신의 성장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그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인생의 참다운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묻겠다. 당신의 정신건강은 안녕한가? 당신은 당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건강에 대해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왜 우리는 신체건강을 위한 노력은 하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등한시 할까? 여태껏 우리는 정신건강을 너무 멀리서 찾았다. 그러나 진리는 평범한 데 있는 것처럼 정신건강도 우리의 일상 속에 있다.

그래서 일상 속의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와 그 처방을 ‘사공정규의 마음 처방전’이라는 칼럼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공정규의 마음 처방전’, 사공정규와 함께 하는 정신 건강 여행에 정중히 초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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