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부부로 맺는 일을 결혼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화촉을 밝히다’, ‘백년가약을 맺다’로 말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혼인(婚姻)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했다. 혼인을 한자의 풀어보면 ‘女+昏’+‘女+因’이다. 女는 여자, 因은 근본으로 이는 모계사회의 흔적이다. 昏은 해가 저물 때로, 혼인은 해가 저물면 부부의 인연(因緣)을 맺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신랑은 장가(丈家)에 들어 일정 기간 머물렀다. 첫 아이를 얻으면 비로소 독립하거나 본가로 되돌아왔다. 이로써 신부는 새로운 부모를 모시기 위해 시집으로 오게 된다. 그래서 ‘장가 가고 시집 가고’라는 말이 생겨났다.
사람이 모이는 행사답게 혼례에는 사람과 관련된 재미있는 용어가 많다. 용어를 가만히 곱씹어보면 우리말 답게 토속적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다.
함진아비 : 혼인 때, 신랑집에서 채단을 넣은 함을 지고 신부집으로 가는 사람.
기럭아비 : 신랑이 기러기를 가지고 신부집에 가서 상 위에 놓고 절하는 전안 의식을 할 때, 기러기를 들고 신랑 앞에 서서 가는 사람.
꼭지도둑 : 혼인할 때 신랑을 따라가는 어린 여자 하인을 일컫는 말.
열두하님 : 혼인할 때 신부를 따르던 열두 명의 여자 하인을 높여 일컫는 말.
족두리하님 : 혼인한 새색시가 시집으로 갈 때 신부를 따라가는 여자 하인을 높여 일컫는 말.
하님 : 여자 하인을 높여 부르는 말.
고이댕기 : 서북 지방에서 혼례를 올릴 때 신부가 드리는 2가닥 댕기.
혼인이 성사되면 혼례를 치르기 위해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의 집으로 간다. 마부를 앞세우고 그 뒤를 청사초롱을 든 하인과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든 기럭아비를 비롯해 꼭지도둑도 따라갔다. 꼭지도둑은 혼례상에 놓인 꼭지숟가락을 훔치는 일을 맡았다. 꼭지숟가락은 어린아이가 쓰는 작은 숟가락으로 자루 끝에 동글납작한 꼭지가 달려있다. 훔친 꼭지숟가락은 나중에 다시 신부에게 돌려주는데, 여기에는 하루빨리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혼례가 끝나고 며칠 뒤, 불편하고 거추장스런 의장을 풀어 놓고 가벼운 복장으로 어른을 뵈었다. 이 만남을 ‘풀보기’라고 일컫는다. ‘댕기풀이’는 신부의 댕기를 푼 신랑이 친구들에게 한턱내는 일로 ‘자리보기’라고도 말한다. 자리보기에서는 짓궂은 성적 농담이 오고 갔다. 자리보기는 첫날밤을 지내는 신랑 신부의 잠자리를 구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첫날밤 신방은 사람이 보아 주지 않으면 귀신이 먼저 엿본다고 하여, 사람들은 신방의 문 창호지에 침으로 구멍을 내어 들여다보았다.
친인척이나 친구들이 모여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렸는데, 이를 ‘족장(足掌)’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 발바닥을 때리면 기혈이 순환해 정력이 향상된다고 하는데, 이를 근거로 신부와의 잠자리에서 힘을 쓰라는 뜻도 숨어 있다. 신랑을 골탕 먹이는 행위를 ‘신랑 다루어 먹기’ 또는 ‘장가 턱’이라고 하는데, 이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신랑을 괴롭혀 인성을 파악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오다가다 우연히 만나 동거하는 예비 부부를 ‘뜨게 부부’라고 한다. ‘뜨게’는 ‘본을 뜨다’에서 나왔는데, ‘흉내내다’라는 뜻으로 혼례를 치르지 않고 부부처럼 행세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에는 이를 ‘동거’ 또는 ‘혼전동거’라고 말한다.
뜨게 부부와 비슷한 말이 있다. ‘두더지혼인’이 그것인데, 정식이긴 하나 남몰래 하는 결혼이다. 옛날 두더지 처녀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상대와 결혼하기 위해 이런저런 동물을 전전하다가 결국은 동족인 두더지 총각에게 시집가고 말더라는 우화(寓話)에서 비롯된 말이다. 과분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부정한 결혼을 지칭하는 말로 ‘보쟁이다’가 있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은밀한 관계를 계속 맺는 행위로, 요즘으로 말하면 내연(內緣) 관계이다. 보쟁이다가 들킨 남녀는 ‘덕석말이’를 하였는데 이는 멍석을 말아서 매를 때리는 벌로 촌락의 자치적 통제방식였다.
이미 결혼한 남녀를 핫아비, 핫어미라 불렀다. ‘핫’은 ‘홑(홀)’과 대조되는 말이다. 핫은 배우자가 있고, 홑은 없다는 뜻을 가진 접두어이다. 그래서 홀아비, 홀어미는 짝 잃은 외톨이를 지칭하며 이들의 독신 생활을 ‘홀앗이’라고 했다.
홀앗이하는 외톨이들도 다시 짝을 만나 새 가정을 꾸렸다. 재혼 또는 재취(再娶)인데 이를 속현(續絃)이라 했다. 續絃은 거문고(琴)와 비파(瑟)의 현이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다는 뜻이다. 끊어진 금슬(琴瑟)의 현이 다시 이어졌으니 그 선율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문화가 바뀌면서 옛 결혼 풍속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에 따라 용어도 몇 가지만 살아남았다. 우리말이 물러간 자리를 웨딩, 웨딩드레스, 턱시도, 스튜디오 촬영, 리허설 촬영, 웨딩앨범, 피로연파티, 메이크업 같은 외국어가 차지했는데, 이러한 용어가 더 고급스럽고 품격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기도 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쓰지 않는 언어는 도태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연지곤지, 족두리, 댕기풀이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문학평론가 김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