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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가로수 길 끝에

등록일 2020-10-11 18:35 게재일 2020-10-1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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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사 적멸보궁 뒤로 사리가 담긴 탑이 보인다.

낙동강이 만들어 준 습지는 예로부터 농사지을 넓은 들을 선물했다. 대로를 달려가다 구미 해평면 마을 길로 접어들면 갈냄새 풍기는 들판 사이로 ‘느티나무 숲 가로수 길’이란 이정표가 먼저 우릴 반긴다. 여기서부터 가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하는 듯하다. 길 양옆으로 느티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려 터널을 만들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니 나무줄기와 줄기 사이로 누런 들판이 언뜻언뜻 스쳐 지나서 더욱 낭만적인 풍경이 완성되었다. 3km 넘게 가로수가 이어져 있어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은 길이다. 달리던 차의 속도를 늦추었다. 차창을 내려 심호흡을 하며 깊숙이 가을을 마셔 본다.

‘용수골 못’을 지나자 느티나무 사이에 간간이 벚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다 길이 가팔라지며 가로수의 수종이 소나무로 변했다. 창을 활짝 열고 이번엔 솔 향기를 맡으며 구불구불 한참을 더 오르면 길 끝에 냉산(冷山)이 품고 있는 고즈넉한 도리사(桃李寺)가 나타난다.

고구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와서 창건한 도리사,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도화상이 서라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겨울인데도 복숭아꽃(桃)과 오얏꽃(李)이 만발해 있는 것을 보고 상서로운 곳이라 생각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근처 도개면 신라불교초전지의 전시관에는 아도화상이 복숭아 꽃그늘 아래에서 참선하는 형상을 재현해 놓았다. 도리사는 법당인 적멸보궁에 불상이 없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구법 중 모셔온 부처님의 사리를 5곳에 나눠 봉안한 곳이 5대 적멸보궁으로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통도사가 있는데 최근에는 대구 용연사, 건봉사, 구미 도리사까지 합쳐서 8대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불교의 성지로 인정되는 곳이다. 법당 뒤로 난 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다.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해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린다. 법당에서 10분도 안 되는 곳에 서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절 주변 소나무 숲에 벤치와 평상이 셀 수 없을 만치 보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사람들이 법당이 아니라 소나무 아래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마음을 풀어놓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휴식처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구포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장려하고 도리사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수려하다.”라고 했다. 서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물이 수려하게 흐르고 구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이곳에 올라 아도화상이 서쪽 황악산을 손으로 바로 가리켰다는 곳에 절을 세우면 불교가 흥할 것이라고 말한 곳이 ‘직지사’가 되었다. 12시 방향에 금오산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가산산성, 팔공산 자락이 있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수필가

극락전 앞에 특이한 모양의 탑이 우리를 돌계단으로 안내한다. 내려가니 소나무숲에 둘러싸인 좌선대가 보였다. 아도화상이 널따란 바위에 앉은 모습을 상상하려는데 할머니가 손녀의 손을 잡고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고 있었다. 그걸 웃으며 지켜보는 내외를 보며, 스님이 거기에 올라 참선을 한 곳인데 저렇게 함부로 오르내려도 되나 싶었다. 아이들이 그러하더라도 타일러야 할 것을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았다. 문화재를 대하는 마음 자세가 아쉽다.

신라 최초의 가람이자 구미 시티투어버스 코스로 지정된 도리사. 일교차가 심한 요즘에는 산자락 밑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니 가을 가람이 중생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늦가을에 향 축제를 연다는 도리사, 아도화상이 큰 병이 든 성국공주를 위해 기도를 올려 낫게 한 후로 집안에 환자가 있거든 아도화상에게 향을 피우면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향이 해평면 들에 퍼진 것인지 절의 일주문이 느티나무 숲 가로수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신라 때부터 지금껏 한자리를 지켜온 도리사의 품이 온 들판을 감싸고도 남는 크기였다. 아기단풍의 색이 짙어질 무렵 한 번 더 찾아가 오랜 세월을 간직한 그 향을 음미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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