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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우산 혁명’이 의미하는 것

등록일 2019-06-23 19:37 게재일 2019-06-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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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번 홍콩 시민 200만 명이 참여한 우산 혁명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다시 촉발하고 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불길이 타올랐기 때문이다.

시위에 참여한 검은 옷의 홍콩 시민들이 한국의 시위 현장처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중국어로 불렀다고 한다. 한국 광화문 촛불 혁명 때처럼 그들은 촛불 대신 우산을 들고 저항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의 방탄소년단과 같은 한류가 세계를 흔들더니 이제는 홍콩의 시위에도 ‘정치 한류’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정치 문화는 비교되지 않지만 그들이 우리의 ‘광장 정치’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나쁘지만은 않다.

홍콩에서 반정부적인 우산 혁명이 시작된 것은 2014년이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청년 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23)은 구금되었고, 세계는 그에게 높은 관심을 보였다. 웡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범죄인 송환법 개정을 주도한 행정 장관 케리 람은 반드시 퇴진해야 한다고 했다.

행정장관이 법 개정을 중지하겠다고 사과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다. 홍콩 인구 700만 중 약 200만 명이나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법 개정에 대한 단순한 불만만은 아니다.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표방하면서도 홍콩인들의 인권을 죄어오는 중국 당국의 통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구 14억의 거대 중국은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이 된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선포했지만 내부적 모순이 산적해 있다.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가 가진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이 선포한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중국식 굴기(<5D1B>起)’의 내면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이 수치적으로는 이미 G2국가가 되었지만 G1국가인 미국에 비해 아직도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 경제 접합과정에서 중국식 관료 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상해 등 강소성(江蘇省)의 비약적 발전에 비해 중국 내륙에는 아직도 발전이 더디다. 소수민족들의 독립 요구는 개혁 개방에 따라 더욱 커질 전망이 높다.

이번 홍콩의 대규모 시위 사태도 사회주의 중국이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홍콩시위를 중국 내륙처럼 무력으로만 진압할 수 없다. 홍콩인들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서구적 민주적 가치와 다원주의 문화가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여 년 전 중국본토에 편입되었지만 대부분 서구적 삶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워라벨을 추구하는 시민들이다. 이들 중에는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이들은 간선제가 아닌 직선제를 통해 홍콩 공화국의 지도자 선출을 바라고 있다. 물론 중국 중앙 당국이 이를 허용할 리는 없다. 홍콩의 6월 시위는 중앙정부의 압제로만 해결되지 않음을 입증하였다. 홍콩의 시민 세력은 결코 중국식 공민으로 개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홍콩의 민권에 대한 요구는 얼마나 확산될 것인가. 인접 광동이나 주해 지역에는 다소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중국의 여타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1989년 천안문 사태는 이미 중국에서의 반체제 운동의 한계를 잘 보여 주었다. 당시 학생들의 시위는 유혈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천안문 광장의 진압은 수천 명의 살상과 이를 방치한 개혁적 지도자 조자양까지 실각시켜 버렸다. 지난번 중국학자들과의 만남에서 중국의 개혁 개방이라는 체제 변화과정에서 중국식 민중 항쟁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를 넌지시 물어 보았다. 그들은 중국 공산당이 건재하는 한 그런 사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슬라보예 지젝은 ‘공산주의는 결국 자본주의와 결혼한다’는 가설을 설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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