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의 남북관계는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철원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북의 장교가 전술도로를 연결하기 위해 어울려 악수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6·25 전쟁 시 전투가 치열했던 화살머리 고지 일대에서 유해를 찾기 위함이다.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 때 손을 맞잡은 남북 지도자의 모습과는 다른 장면이다. 개성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돼 남북의 회합이 성사됐다. 이미 비무장지대 내에서는 최전방 초소가 철수됐다. 남북 간에는 휴전 선언에 버금가는 적대적 긴장관계가 해소되고 있다. 북미 관계에 비해 남북관계는 순풍에 돛을 단듯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이를 보는 시각은 불행하게도 양분돼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에서는 이러한 사태의 진전을 매우 불안하게 보고 있다. 남북의 전격적인 군사합의는 안보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입장이다. 일부 극우 보수층은 김정은의 비핵화 선언은 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사기술로 간주한다. 일부 전문가들도 북한 당국이 핵협상을 장기화하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술책으로 간주한다. 북한 당국이 일종의 살라미전술을 택했다는 것이다. 모두 북한 당국에 대한 강한 불신에 기인한다. 과거 시드니 후크가 공산주의자와 대화할 때 그들의 ‘입을 보지 말고 눈을 보라’는 경고에 의존한 결과이다.
이에 대해 진보층에서는 남북관계의 현재의 변화를 대체로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하고 정부의 대북정책도 지지한다. 이들은 남북합의서의 국회 비준도 필요하고 김정은 위원장의 남한 방문도 환영한다. 대북 제재가 해제되면 대북 투자도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진보진영에도 급진 진보와 온건 진보는 정책의 방향과 속도에 차이는 있다. 이들은 남북의 화해가 시대적 소명이라는 입장에는 모두 동의한다. 이들은 남북이 제도적 법적으로 완전한 통일이 어려우면 EU와 같은 사실상의 통일을 희망한다. 결국 진보진영은 남북의 다방면의 교류 협력을 통해 마침내 독일식 통일이 성사되길 바란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진영 간에는 대북 정책에 관한 시각의 차이가 크다. 탈냉전 시대에도 한반도에는 통일 문제에 관한 여론이 대립하는 주된 이유이다. 한반도에서 첨예한 이념 갈등의 주된 이유는 무엇보다 한국 전쟁이다. 6·25 전쟁은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의 대리전이 됐다. 이 점이 분단 시 독일과 우리의 상황이 다른 점이다. 한편 여야 정치인들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선거 시 안보를 앞세운 보수 정당의 ‘북풍’공작은 보수층의 표를 모으는데 상당히 기여했다. 매카시적 수법이 수시로 등장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는 이러한 안보이슈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시들해졌다. 여러 차례 선거의 학습효과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남북문제에 대한 가짜(fake)뉴스가 확산되어 보수진영을 결집시키고 있다. 사실을 왜곡 보도해 이념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결국 대북 문제에 관한 시민 사회의 이념 갈등은 정부의 대북 정책의 추동력을 약화시킨다. 우리는 대북 정책에 관한 시민사회의 합의기반을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야 정치권부터 대북 정책에 관한 ‘역사적인 타협’이 전제돼야 한다. 독일 기민당과 사회당이 합의한 동방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진영 간에도 진정한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오류부터 인정해야 한다.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한 보수의 부정적 맹목적 시각은 시대에 역행함을 알아야 한다. 진보 역시 급진적인 남북관계 진전이 초래하는 위험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헌법기관인 민주 평통이 이러한 중재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