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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의 밤

등록일 2018-11-09 20:36 게재일 2018-11-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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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희수필가
▲ 김순희수필가

이 비밀을 비밀로 남겨둘까 망설였다. 좋은 것은 좋은 이에게만은 알려주는 게 맞지 싶어 밤마실을 나갔다. 동행하자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갈 곳이 어딘지 묻지도 않고 얼른 따라 나선다. 밤기운이 쌀쌀하니 두툼한 외투 하나 더 준비하라는 내 말에 친구는 곰돌이가 되어 차에 올라탄다.

그 곳에 문 닫기 전 도착해야 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유강터널을 지나 천북으로 들어서니 그제야 목적지가 어디냐 묻는다. 불국사! 가 본 곳이지만 나와 함께 간다니 더 좋다고 웃는다. 기분을 맞출 줄 아는 친구다. 동절기라 다섯 시 반이 지나면 입장불가이지만 나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든지 오래 구경해도 된다. 불국사 밤나들이는 처음이라 설렌다는 친구, 하지만 몇 번째인 나도 설레긴 마찬가지였다.

이 시간에 들어가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왁자하던 무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썰물이 되어 빠져나갔다. 그나마 먼저 와 있던 외국인 단체 관람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느라 눈과 귀가 바쁘다.

우리가 경내에 들어서니 범영루 처마 끝에 해가 걸렸다. 노을빛에 친구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었다. 환할 때만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늦은 시간에 오니 자기가 알던 그 불국사와 또 다른 모습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을 찰칵. 다보탑과 석가탑은 매일 보는 해거름일 텐데도 길게 그림자를 늘이며 뒷걸음치는 해를 아쉬워했다.

해가 산을 넘어가도 아직 어둠이 내려앉으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그동안 극락전과 무설전을 돌아본다. 구경꾼들이 사라진 절에는 우리 발자국 소리 뿐이다. 마사토가 내 신발에 사박사박 밀려나는 소리가 듣기에 좋다. 고요할 때나 들을 수 있어서 더 그렇다.

무설전 뒤 언덕에 위치한 관음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보폭이 높아서 기다시피 올라야 한다.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이다. 계단 중간쯤 오르는 친구를 불러 세워 또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 밑에서 올려다 보는 풍경은 극락전 마당에 달린 오색등이 문 사이로 살짝만 드러나서 색의 조화가 남다르다. 비로전에 비로자나불까지 찾아보니 어스름이 내렸다.

돌아와 대웅전 앞 돌계단에 앉아 준비해 온 따뜻한 차를 나눠 마셨다. 회랑에 매달린 등의 이름표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수런거린다. 고양이 한 마리 발소리도 없이 마당을 가로지른다. 콩새도 겁 없이 마당에 내려와 먹이를 쪼아 댄다. 토함산을 지나는 바람이 소나무를 비벼 가지에 쏴아~파도를 일으킨다. 때 맞춰 보살님이 기다란 막대를 들고서 건물 모서리마다 등을 켠다. 연꽃모양의 등이 어둠을 재촉했다. 꽃문살 사이로 불빛이 붉게 또 노랗게 새어 나오는 대웅전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다렸다. 하늘의 색이 기와와 같아 질 때를.

이제부터 소리를 볼 시간이다. 스님들이 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 한 분이 먼저 회랑 난간에 손목시계를 매놓고 시간을 보고 한 분이 북채를 잡은 채 준비 중이다. 두둥~오늘은 6시 20분에 연주를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7시였는데 해가 많이 짧아졌다. 다섯 분의 스님이 1분씩 돌아가며 북을 친다. 10분 동안 어둠속을 달려가는 북소리를 보았다. 그 뒤를 이어 종이 울렸다. 서른세 번 불국의 밤을 가른다. 종소리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목어가 단아하게 몸을 떤다. 때 맞춰 운판이 쨍한 소리로 화답한다. 하루 세 번 열리는 불국사의 음악회다.

넋을 놓고 보던 친구의 손을 끌어 다시 대웅전 앞에 섰다. 불상 앞에 놓인 작은 종이 울리고 저녁 예불이 시작됐다. 목탁소리와 스님의 불경소리가 마당을 나와 토함산을 기어오른다. 어둠이 짙을수록 대웅전의 꽃문살이 가을단풍보다 곱게 물들었다.

친구와 나도 붉게 물들었다. 친구야, 불국사의 밤이 낮보다 아름답다는 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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