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미 전술은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살라미(salami)’에서 따온 말로, 협상 테이블에서 한번에 목표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부분별로 세분화해 쟁점화함으로써 차례로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말한다. 북한이 핵협상 단계를 최대한 잘게 나누어 하나씩 단계별로 이슈화하고 이를 빌미 삼아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최대로 얻어내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북한의 전매특허였던 살라미 전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대해“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비핵화 속도에 점차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북제재 효과가 쌓이면서 결국 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야금야금 내놓는 것을 베껴 미국 또한 비핵화 시한을 점층적으로 늘리는 전술을 가리켜‘살라미 미러링(mirroring·모방)’을 펼치고 있다고 평한다. 이른바‘역(逆)살라미전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일리노이주 선거 유세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협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과 관련해 “북한 핵실험이 없는한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사람들에게도 말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시간싸움(time game)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문턱을 없앤 셈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시간 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종전선언 대신 대북제재 해제 같은 경제적 요구에 집중하는 만큼 키를 쥔 미국으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본격적인 비핵화와 보상의 주고받기를 앞두고 북-미의 샅바 싸움이 길어지는 것같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북미간 살라미 전술이 펼쳐지는 동안 남북간 교류협상은 조금씩 진전하는 듯 하면서도 일부 협상은 답보 내지 정체상태를 면치 못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 실감케 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