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대구·포항 등 지역 제조업<br />2분기 생산·설비투자 잇단 감소<br />전국, 20년 만에 최장 마이너스 <br />최저임금 인상 겹치며 ‘악화일로’<br />기업 “버텨낼 힘도 없어” 한숨만
최저임금 정책추진에다 경기부진이 겹치면서 지역기업들이 설비투자에 손을 놓고 있다. 중소기업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구·경북은 자칫 산업의 근간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서도 기업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0.6% 줄어 올 3월 이래 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전후해 지난 1997년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10개월간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래 20년만이다.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월보다 0.2포인트 떨어진 99.8을 기록했고 2개월 연속 하락세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100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6년 8월 이후 23개월만에 처음이다. 현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7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 달보다 0.3포인트 떨어졌다. 4월 이후 4개월째 하락세다.
업황지수에서도 경기 전망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올해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대구·경북 모두 100을 밑돈 것은 물론 업황BSI가 업황전망BSI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BSI가 100 이상인 경우에는 긍정응답 업체수가 부정응답 업체수보다 많음을, 100 이하인 경우에는 그 반대임을 나타낸다.
대구의 경우 제조업 업황전망 BIS가 지난해 12월 70으로 조사됐으나 실제 업황 BIS는 65에 그쳤다. 올해 1월에는 64→57, 2월 57→49, 3월 63→62로 전망치를 밑돌았다. 5월 들어 실제 업황 BIS가 78로 전망 BIS(69)보다 한때 높게 나타났으나 6월(73→63), 7월(66→59) 연속 실제 업황 BIS가 업황전망 BIS를 밑돌았다.
경북도 지난해 12월 제조업 업황전망 BIS는 83이었으나 실제로는 73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 72→68, 2월 68→64, 3월 67→76, 4월 78→73, 5월 67→74, 6월 73→60, 7월 63→57로, 3월과 5월을 빼고는 전망치를 밑돌았다.
이런 수치는 지역업체의 제조업 설비투자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 2분기 제조업 생산과 설비투자는 1분기와 비교해 하락했다. 제조업에서는 구미지역의 휴대폰과 디스플레이 생산이 감소했고 휴대폰은 전세계 프리미엄폰 수요가 위축되면서 부품 수출이 둔화돼 감소했으며, 디스플레이도 중·소형 OLED 패널 생산 부진과 중국업체의 LCD 패널 생산 확대 등으로 감소했다. 휴대폰의 국내 생산 감소, 수출 부진 등 경기가 악화되면서 설비투자가 감소했다. 또 디스플레이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생산라인 축소 기조에 따라 신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구미 뿐만 아니라 대구와 철강업체가 밀집돼 있는 포항도 마찬가지다.
대구 제3산업공단에서 선박용 부품을 제조·납품하는 업체 대표 A씨(68)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생산라인 재정비 등 나름 돌파구를 찾으려 애써왔지만, 조선 등 중공업 분야가 침체기에 접어들고 수주량조차 급감하면서 더 버텨낼 힘조차 없다”면서 “한때 40명의 직원이 일했던 공장이 지금은 1·2공장을 합쳐도 10명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종 특성상 3년 단위로 설비투자를 해야 하지만, 수주량 부족 등 생산 효과가 불투명하고 경기전망도 어두워 설비투자는 고사하고, 지금은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선박용 부품 절삭업체 대표 B씨(61)는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울산 지역의 업체 여러 곳이 문을 닫다 보니 반사이익으로 우리 업체로 물량이 몰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고갈될지 몰라 버틸때까지 버텨 본다”면서 “설비투자는 우리처럼 영세한 업체와는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성서공단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을 하는 C씨(64)는 “경기가 좋아지면 투자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텐데, 지금의 경기침체는 끝을 알 수 없다. 설비투자를 하더라도 그만큼의 생산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입주한 구미지역에서 올 하반기부터 설비투자 기대감이 일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 그나마 희망을 비추고 있다.
삼성이 180조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바이오와 반도체 등에 중점 투자하겠다고 해 구미지역 홀대론이 일기도 했지만, 반도체와 관련된 업체들이 구미에 많아 다시 기대감이 나돌고 있다. LG가 구미지역에 POLED(플라스틱OLED)와 차량용 LCD인 오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나갈 방침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도 지역경기 회복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밖에 SK실트론이 LG구미 2,3공장 인수설이 나오고 있어 설비업체들의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LG측은 “SK실트론이 LG2,3공장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만 밝혔으나 SK가 LG로부터 실트론을 인수했기 때문에 LG구미 공장 인수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역 설비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신규 투자가 없어 사실상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최근 들어 대기업의 신규투자설이 나오면서 관련 중소기업들의 문의가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올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차츰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상선·김락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