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지방 선거는 예상대로 자유한국당의 참패로 끝났다.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TK 두 곳과 제주를 제외하면 모두 여당에 넘겨줬다. 지난 총선,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 선거의 패배는 자유한국당을 심각한 위기로 내몰고 있다. 선거 참패 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저희들이 잘 못했습니다’고 국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잘 못을 했는지를 자각하지는 못한 듯하다. 홍준표 대표 사퇴 후 당은 어디로 갈지 방향도 잡지 못하고 속수무책이다. 당내에는 책임을 통감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사람은 없고, 고작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한두 명 보인다. 당내의 친박과 비박은 원색적으로 비방하고 사퇴를 강요하고 있다. 어느 누구 하나 ‘내 탓이오’하고 가슴을 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이제 미몽에서 깨어나 선거 패배의 원인부터 철저히 자성해야 한다. 이번 지방 선거 패배는 단순한 선거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일찍부터 예상된 패배이다. 자유 한국당은 두 번의 대선 승리에 취해 보수의 참 가치마저 상실했다. 당내 민주주의는 사라져 버리고 대통령의 절대적 권위에 복종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이비 보수정당’이 되고 말았다. 이들은 보수 정당을 자처하면서도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지 못했다. 보수는 기득권의 유지만이 아니라 민생을 위한 국민의 권리부터 지켜야 한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그간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에만 안주했으니 탄핵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들은 국정 농단의 모든 책임을 전직 대통령과 최순실에게만 돌려 버렸다. 이번 선거 참패는 권위주의와 독단주의에 안주한 보수 정당에 대한 심판이며 인과응보다.
이번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퇴영적 리더십은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 홍준표 대표의 시대에 뒤진 안보 논쟁과 종북 프레임은 선거에서 역효과를 자초했다. 보수 정당의 대북 강경 적대시 정책은 결코 평화시대의 화두가 될 수 없는 데도 그들은 또 다시 안보 프레임을 선거에 이용하였다. 지난 대선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한 종북 프레임을 재탕했던 것이다. 또한 당 지도부는 서울, 충청, 경남 등 여러 곳에서 철지난 올드 보이를 공천하였다. 변화의 시대에 희망을 주지 못하는 명망가의 공천은 당 이미지만 더욱 손상시켰다. 보수의 중심 대구·경북에서까지 홍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부했으니 어찌 선거의 승리를 기대하랴.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은 이제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당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이들은 우선 골이 깊은 당내 싸움을 멈추고 보수의 대통합의 길을 열어야 한다. 과거 자유당이 내건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슬로건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당내의 친박과 비박의 정치적 헤게모니 쟁탈전은 결국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탄핵 문제로 갈라선 유승민의 ‘합리적 보수’는 보수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중대 선거구라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현 정치 풍토에서 제 3의 정당은 뿌리를 내리기 어렵고 성공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연립정부나 연합 정부의 전통이 부족한 우리 정치 풍토에서 중도 통합을 표방한 제 3당은 성공하기 어렵다. 바른미래당의 패배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보수 정당은 이제 개혁의 주체인 새로운 리더십을 옹립하여야 한다. 우선 누가 봐도 보수 개혁에 적합한 인물을 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야 한다. 지금 미봉책으로 거론되는 원로 중진은 임시방편은 될지 몰라도 개혁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보수정당의 정체성과 거리가 먼 인사를 당의 얼굴로 삼아서도 더욱 안 될 것이다. 친박과 비박을 아우르면서도 참 보수의 가치를 구현할만한 인재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총선은 2년도 남지 않았다. 총선 전 갑작스런 짝짓기 형의 당 통합과 어정쩡한 당 개혁은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