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상의 유엔 가입국은 195개국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여러 인종이나 민족이 한 나라를 이룬 연방국가도 있고, 같은 민족이 여러 나라로 분산되어 살아 가는 경우도 있다. 독일은 2차 대전 후 같은 민족이 동서로 갈라져 오랫동안 분단된 상태로 살아가다 1990년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게르만이지만 아직도 두 개의 나라로 공존하고 있다. 거대 중국도 대만이 독립되어 있지만 ‘일국양제’라는 표현으로 분단국 이미지를 감추려 하고 있다. 몽골은 독립된 외몽고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된 내몽고로 분리돼 있다. 중국과 대만 간에는 담론수준의 통일 논의는 있다. 그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 내몽고와 외몽고의 통일 논의는 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평화적 공존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반도의 한(조선)민족은 유례가 드문 단일 민족이다. 전 세계의 분단국이 대부분 통일된 현실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가능할 것인가. 남북 간의 화해와 교류가 이루어질수록 이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남북 양쪽에는 다행히 아직도 통일의 열망을 가진 사람이 많다.
남북 모두 통일의 꿈은 대단하지만 남북 간의 급속한 통일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민족 통일의 정서적 열망은 강하지만 통일의 논의에서는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기 때문이다. 남북 당국은 그간 각기 남북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박정희 정권과 김일성 정권은 1971년 7·4 공동 선언마저 정권 연장과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공동 선언 후 김일성은 ‘주석’직을 두어 권력을 독점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10월유신을 선포해 종신 대통령의 길을 열었다. 양쪽 공히 남북의 적대적 대립관계를 정권유지에 이용한 결과이다.
남북관계가 4·27 판문점 선언으로 모처럼 상당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난항을 겪고 있지만 큰 틀에서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북미간의 대화는 재개될 것이다. 남북의 상이한 체제가 하나의 통일체로 나아가기에는 아직도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그러나 전 세계의 분단국은 통일의 과업을 성취했다. 베트남은 무력에 의해 통일 됐고, 남북예멘도 정치적 통일에 합의했으나 결국 내전에 따른 무력에 의한 통일로 종결됐다. 독일의 통일 역시 형식은 합의에 의한 통일이지만 결국 ‘작은 동독’의 ‘큰 서독’에로의 흡수통일로 종결됐다. 우리도 독일의 통일 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통일은 한반도의 두 나라의 공존과 협력시대를 거쳐야 한다. ‘사실상의 통일’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교류와 협력이라는 평화로운 공존이 전제돼야 한다. 결국 한반도의 두 나라는 평화롭게 살아가다 어느 시점에서 한민족 구성원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은 체제가 다른 두 나라가 공존하는 기반이다. 남북이 갈라져 있지만 독일처럼 상호 인정하고 내왕하고 교류 협력하는 길이 모색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종전이 선언되고 남북과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은 상호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는 실질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현 상황에서는 남북은 아직도 통일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부터 이제 이러한 구태를 탈피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 교류를 통해 북한을 ‘정상 국가’로 만들어 가야 한다. 북한 김정은은 늦은 각성이지만 그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종래의 핵을 보유한 폐쇄정책만으로 체제의 안보도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듯하다. 그것은 김정은 개인의 인식 변화에 기인하기보단 현실적 상황이 그들에게 가르쳐주는 선물이다. 여기에 한반도에 유엔에 가입한 두 나라 평화로운 공존론이 설득력을 지닌다. 물론 두 나라의 평화로운 공존은 기필코 한시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