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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의 역설… 복지대책이 ‘독배’?

김명득기자
등록일 2018-05-09 21:20 게재일 2018-05-0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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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근 수당 등 사실상 증발<br />근로자 월 수십만원 깎여<br />사측 인건비 부담도 가중<br />정부 정책 되레 부작용에<br />뾰족한 대안 없어 골머리<br />탄력시간제 확대 등 시급<br />300명 이상 7월부터 시행<b

‘법정근로시간 단축’ 태풍이 본격 밀어닥치기도 전에 노사양측이 모두 겁을 먹고 있다.

8일 오전 10시30분 포항시 남구 포항철강공단 내 A업체. 총무팀장과 노조위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파장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포항철강공단에는 요즘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1단계로 종업원 300명 이상 업체를 대상으로 7월1일부터 시행된다. 이어 1년반 뒤인 2020년 1월부터는 50~299인 업체들이 2단계 대상이다. 이같은 단계적 시행에도 불구하고 수혜대상인 근로자들이 오히려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당장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시간외 수당이나 특근 수당 등으로 벌어오던 수입이 법정 주 52시간으로 단축되면 확 줄기 때문이다. 직원수가 500명이 넘는 A업체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직원 1인당 월 40만~50만원 정도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회사측이 이를 보전시켜 주기 위한 방법도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다. 노사의 고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결국 근로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근로자를 위한 법이 오히려 근로자들에게 독(毒)이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계가 정부를 상대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회사 측도 답답하지만 정부가 정한 노동법을 거스를 수 없다고 일축한다. 회사측도 당장 주 52시간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곳곳에서 부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본적인 교대근무는 어떻게 맞춰갈 수 있지만 사고 등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다. 당장 직원들을 현장에 투입하는 것조차도 불법이기 때문이다.

회사측도 이 문제를 놓고 노조와 공조를 취한다는 시늉은 내고 있지만 실상은 뾰족한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확실한 해법을 내놓지 않는 한 근로자들의 불익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중소기업연구원은 오는 7월부터 시행하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보완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점점 거세지는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단위로는 최대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더라도 2주 동안 평균 주 52시간을 맞추거나, 노사 합의를 통해 3개월 내에 주당 52시간 이내로 근무시간을 맞추면 별문제가 없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내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40% 이상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도급 업체인 현실에서 탄력 근로 기간을 3개월로 한정하는 것은 대기업이 지정한 납기를 맞추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기업 납품 기업들은 매출의 80% 이상을 대기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근로시간을 줄인 선진국들도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우리보다 길게 설정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는 단위 기간이 1년이며, 독일은 기본은 6개월이지만 노사가 합의하면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일본은 노사 협약에 따라 특별조항을 넣으면 1년에 6개월은 제한 없이 초과 근무를 할 수 있고, 프랑스는 50명 미만인 중소기업은 노사합의로 자유롭게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다.

중기연구원은 국내 중소기업 현실을 반영해 근로기준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이른 시일 안에 법에 명확히 해 중소기업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단위 기간 확대 등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보완책을 4년 뒤인 2022년 말까지 마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지난 2003년 주 40 시간 도입과 함께 제정한 뒤 15년 동안 큰 변화가 없는 중소기업 인력지원 특별법도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구의 기업규모별 1단계 시행 대상은 전체 20만5천여곳 중 100곳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근로자수로는 92만여명 가운데 8만여명으로 약 8%에 달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제도 시행부터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북도의 경우에도 22만2천여 사업체 중 300명 이상 업체는 175곳이나 종업원수는 13만7천여명에 이른다.

/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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