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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남북 학술회의를 다시 회상한다

등록일 2018-05-08 21:24 게재일 2018-05-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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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꽉 막혔던 남북 교류협력의 물길을 열어 놓을 것이다. 남북의 학자들 간의 교류도 재개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17년 12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관계의 발전과 학자들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학술 토론회에 참석한 바 있다. 남북 학자 60여 명이 참가한 모처럼 마련된 학술회의였다. 순수 자연과학 외의 남북 학술회의는 남북 학자들의 진지한 토론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남북 학자들은 체제의 차이로 이념적·가치론적 지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날 금강산 학술회의에서도 남한의 진보적인 정치 경제학자로 알려진 L교수가 발표 중 ‘식량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 경제’라는 발언을 했다. 북한 학자들이 학술회의 중단을 선언하고 일제히 퇴장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막후 협상 후 학술회의는 재개되었지만 당시 남측 참여자들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 후 남북 학자들은 토론에서 자신의 입장만 개진하고 질의나 토론이 없어 학술회의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북한 측이 마련한 만찬은 금강산 목련식당에서 거대하게 치러졌다. 당시 대표단의 상호 인사에 이어 건배 제의가 여러 번 있고 술이 몇 순배 돌자 냉랭했던 분위기는 일시에 달라져 버렸다. 나는 당시 옆 자리에 앉은 북한 어느 교수에게 금강산 오는 길 차창 밖의 옥수수 집단농장의 영농 사정을 은근히 물어보았다. 나는 집단농장의 옥수수 수확량이 왜 그렇게 저조한가를 슬쩍 물어보았다. 북한 김철주사범대학 사상 정치 담당 교수라는 그는 집단농장원들이 당이 지시한 주체 영농방법을 따르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비료도 부족하고 수로도 확보하지 못한 천수답 집단 농장의 당연한 귀결인데 그는 그 책임을 모두 집단 농장 인민들에게 돌려버렸다. 다시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언쟁이 예상되어 참아버렸다.

북한의 원로 L선생도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식사 중에도 북한의‘사회주의 강성대국’론을 자랑하였다. 그 방법은 선(先) 군사·사상 국가 건설이고, 후(後) 경제 강국 건설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이념적인 사상 강국, 정치 강국은 이미 완성되어서 군사 강국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군사 강국으로서 핵을 보유해야만 미국으로부터 나라를 보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북한의‘경제 강국 건설’이 최우선 아니냐고 강변했지만 그는 북의 핵무장이 한반도의 남쪽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하였다. 그 후 북한 당국은‘선군 정치'라는 구호를 빈번하게 사용하였고,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노선’까지 정당화하였다. 당시 고령이었던 아태위원회의 L선생은 아직도 생존해 계실까.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핵 폐기’를 선언한 이 시점에서 그의 견해라도 듣고 싶다.

금강산 마지막 학술토론회가 끝난 지 벌써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북한 땅은 오늘날 어떻게 변해 있을까. 금강산 학술회의 당시부터 북한이 개혁 개방을 통한 경제 발전에 주력했다면 그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지난 연말까지 ‘핵 주권 국가'임을 자랑하던 김정은 위원장이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핵 포기를 선언하였다. 2000년대 초반 김정일은 중국 상해 개방 특구인 황포강 하구를 유람한 적이 있다. 그는 선상에서 휘황찬란한 푸동의 빌딩 숲을 바라보면서 ‘아버지(김일성)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라고 푸념까지 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늦으나마 민생 경제를 위한 ‘경제 건설’노선을 선언한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이 북한식 개혁·개방의 출발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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