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농담 같은 진실이 있다. 농담이라기에는 정말 심각한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길을 걸어가는 사람 중 아무나 두 사람을 골라서 “대학을 들어갈 때 어떤 시험을 치르고 어떤 과정을 겪었나?”라고 물으면 똑같은 과정을 겪어 대학을 들어간 두 사람은 한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미국에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질문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쳐다볼지 모른다. 그들은 입시정책이 거의 바뀌지 않으며 대부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 바뀐다고 한다. 매년 바뀌어 왔지만 이번엔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다. 교육당국이 그동안 유지해 온 대입 수시모집 확대 정책을 하루아침에 흔들면서 대학과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 2007년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이래 정시 비중 감소는 교육부의 권장 사항이고 이에 대해 교육부가 문제를 삼은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교육부 차관이 몇 개의 대학 총장을 직접 만나고 또는 전화를 걸어서 정시모집 확대를 요구했다고 한다. 소위 ‘주요 대학’들이다.
이러한 압력성 요청에 대하여 비난이 빗발치자 교육부는 특히 정시 비중이 낮은 대학에 학생·학부모 의견을 전달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교육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대학들이 교육부의 이런 압력성 요청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은 아마도 교육부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국 대학의 수시모집 비중은 매년 ‘교육부 요청’에 의해 증가되어 왔다. 10여 년 전 1/3도 안 되는 수시 모집비율은 매년 증가 현재는 전체 모집정원의 3/4 정도를 수시로 모집하고 있다. 사실상 이는 교육부의 요청을 대학들이 충실히 따라온 결과이다. 그런데 갑자기 교육부는 수시모집을 축소하고 정시모집을 확대하라고 다시 종용하고 있다. 대학들은 어리둥절해지고 있다. 200년 역사의 미국은 대학입시 정책이 잘 바뀌지 않는다. 각 고교 내신 성적과 SAT, ACT라고 하는, 우리의 수능시험 같은 성적을 참고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수시, 정시 구분도 없거니와 구분이 있다 해도 교육부가 간섭하지 않는다. 미국이 대학입시 정책을 안 바꿔 대학들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고 학부모들의 불만의 소리도 듣지 못한다.
본 칼럼을 통해 필자는 그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우리가 선진국임을 자부하기 위해 스스로가 ‘바꿔야 할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바꿔야 할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인식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입시제도나 대학 선발 방식은 자주 바꿔야 할 제도가 아니다.
입시제도가 한국의 근본적 입시과열과 비창의적 교육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봐야 한다.
한국 대입의 문제는 과열된 입시경쟁에서 시작된 것이지 제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과열된 입시경쟁은 고용이나 인식을 수정하는 사회적인 접근 방식이나 대학의 클러스트(군집화)같은 과열을 완화시키는 근본적 방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설프게 문제를 바로 잡으려다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고 다시 고치는 악순환이 거듭돼 왔다. 이제 우리는 교육 제도만은 섣불리 바꾸지 않고, 시행을 하는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교육부는 위에 열거한 사회적인 문제나 대학경쟁의 근본적 인식이나 구조를 바꾸는 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해결에 힘써야 한다.
“교육부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정책”이라는 말은 오랜 교육계의 조크로 회자되어 왔다.
수시모집 확대를 주문하던 교육부가 갑자기 수시모집 축소, 정시모집 확대를 요구하는 모양새는 이런 조크를 더 정당화 시키고 있다. 교육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조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