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일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독일 통일 문제 전문가들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북한의 약 5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평창 올림픽에 참여하고 있다. 김영남과 김여정, 최휘와 리선권 등 고위급 대표단은 청와대를 방문했다. 280명의 응원단과 태권도 시범단, 140명의 북한 예술단, 올림픽 선수단과 기자단이 현재 남한에 체류 중이다. 그들은 대부분 줄을 서서 조별로 이동하고, 기자들의 질문에도 거의 답변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차창 밖으로 비쳐지는 남한의 풍광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 대규모 방문단은 사전 소집되어 철저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시 북한 대규모 응원단이 대구에 온 적이 있다. 그들은 이동 중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악수하는 플래카드 사진이 비에 젖는 것을 보면서 눈물까지 흘리며 항의한 적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수령의 현수막 사진을 가슴에 안고 행진했다. 당시 우리 언론이 특이한 그 모습을 보도했지만 그들은 그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들의 수령 절대론은 어릴 때부터 학습하여 체질화된 결과이다. 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남쪽 사람과 대화를 삼가는 것도 이러한 교육의 결과이다. 그들은 이곳에 와서도 자아비판 시간인 `생활 총화`시간을 통해 자신들의 언행을 돌아볼 것이다.
북한의 예술단과 응원단은 대부분 평양 거주자들이다. 평양은 상당한 수준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이고 문화적 혜택을 많이 누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발전된 한국의 모습에 크게 놀라지는 않지만 문화적 괴리감은 다소 느낄 것이다. 평창 올림픽은 남북 간의 땅 길, 하늘 길, 뱃길까지도 잠정적으로 열어 버렸다. 이들은 새로 개통된 KTX로 인천, 서울, 평창, 강릉을 오가고 사통팔달 잘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보았다. 자전거를 타고 소달구지가 오가는 북한의 농촌 모습과 대조적인 남한의 풍광에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화려한 올림픽 개막 장면, 서울의 복잡한 교통상황, 질문 공세를 퍼붓는 남조선 기자들, 남쪽 여성들의 옷차림, 그들은 숙소에서 수십 개가 넘는 남쪽 TV 채널을 돌려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생각이 몹시 궁금하다.
강릉과 서울에서의 예술단 공연은 성황리 치러졌다. 체제 선전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던 공연은 축제 분위기에서 성황리에 끝났다. 그들의 `반갑습니다`로 시작한 공연은 남북의 노래와 연주, `다시 만납시다`로 마무리 지었다. 삼지연 악단은 이선희의 `J에게`부터,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나훈아의 `사랑`,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도 불러 관객들의 흥취를 돋웠다. 대체로 정치 선전적 내용은 보이지 않고 분단의 비극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래가 주종을 이뤘다. 그들은 종래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색채가 짙은 노래는 교묘히 피해갔다. 이번 공연이 그들의 응급 처방식 급조된 프로그램이지만 또 다른 변화의 일단을 보여줬다. 예술단은 이번 공연에서 남한 동포들의 적극적인 호응 앞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분단의 세월은 사람들의 생각마저 다르게 했다. 북한식 독특한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수령론과 집단주의에 길들여진 북녘사람들의 사고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독일은 통독 전 양독 간의 수백만 명의 인적 교류가 이뤄졌으며 그것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 독일 통일은 서독인이 아닌 동독인들의 의식변화가 주도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의 새로운 교류와 협력이 성사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것이 북한주민들의 굳어진 의식을 서서히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와 유엔의 대북 제재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 대화를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