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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민주운동,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다

등록일 2017-12-04 21:03 게재일 2017-12-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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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대구 시민들이 열망하던 2·28 민주운동이 드디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다.

1973년 3월 30일 제정·공포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4142호)에 의해 지난해 국회에서 2·28 국가 지정 기념일 촉구 결의안이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국가기념일에 관한 사항은 법령이 아닌 규정이기 때문에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대통령이 선언만 하면 된다. 주무부서인 국가 보훈처와의 협의를 거쳐 행정안전부는 내년 1월 2일 입법 예고기간이 종료되면 대구 2·28을 정식 국가 기념일로 확정한다. 1960년 대구 2·28 민주 운동이 해방 후 한국 학생 민주화 시위의 효시임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10대의 고등학생들이 이승만 독재 정권에 저항한 용기 있는 거사는 3·15 마산의거로 연결되어 4·19 학생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자유당의 폭정 하에서 집단시위는 엄두도 못 냈던 시절이라 그들의 외침과 항거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승만의 독재는 가속화 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의 급작스런 서거 상황에서 치러지는 선거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였다. 당시`못살겠다, 갈아 보자`는 민심은 학생들의 2·28 의거를 통해 대구에서 폭발한 것이다.

자유당 독재 정권은 야당 민주당의 수성천변의 강연을 막기 위해 중고등학생들을 일요일 강제 등교 시켰다. 그것이 대구 2·28 학생 시위 사건의 발단이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도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등교했다가 항의 끝에 귀가하였다. 나는 2·28 당일 인접 경북고등학생들이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자리인 도청까지 시위를 벌인 것도 모르고 수성천변의 민주당 강연장을 찾았다. 당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의 연설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야당도시 대구의 시민들은 구름처럼 수성 방천으로 모여들었고 까까머리 중학생인 나도 군중 속에서 유명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을 수 있었다. 2·28 민주 운동은 대구에서 일어난 민주 민권 운동이며 한국 정치사에서도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거사이다.

대구시 조례로만 한정되어 있는 2·28 기념사업은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이번 국가 기념일 제정은 2·28 기념 사업회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다.

2016년 5월 26일 기념사업회는 2·28 민주운동 국가기념일 지정 범 시·도민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서명운동까지 전개하였다. 국회에 제출된 청원서에는 공동 서명인 124만4천649명의 뜻이 잘 모아져 있다. 그 결과 2·28 민주 운동은 국가 기념일 지정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마산 3·15 의거와 광주 5·18 항쟁이 기념일로 지정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대구 2·28이 늦게나마 국가 기념일로 확정된 것은 무척 다행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구의 2·28의 역사적 의의를 간취하고 지난 대선 공식 선거 운동을 대구 2·28 공원에서 출범하였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45개의 국가 기념일을 지정하여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대구 2·28의 국가 기념일 제정에 즈음하여 우리 지역민들도 2·28 정신을 바르게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경주하여야 한다. 2·28기념사업회도 다시 2·28의 정신을 되새겨 2·28 민주 운동의 새로운 좌표와 과제를 설정해야 할 시점이다. 지역민들은 2·28의 민주 항쟁 정신이 대구의 특정 정당 일당 독점 정치와 합치되는지를 냉철히 자성하여야 한다. 2·28 정신은 지역감정에 기초한 소위 수구적인 TK 정서와는 결코 합치되지 않을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2·28 국가 기념일 지정 기념 열린 공청회나 학술회의를 개최하기를 기대한다. 2·28 정신의 계승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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