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지만 일어나서 퇴장하는 학생은 없었다.
입장할 때나 졸업장을 받으러 행진하면서 온갖 흥미로운 몸놀림을 하면서 자유분방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질서는 유지된다.
식장 바깥에서 서성이는 졸업생들은 식이 진행되는 중간에는 볼 수 없었다.
몇일 전 미국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본 풍경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한국의 각 대학 졸업식이 시작된다.
몇년 전 포스텍 졸업식장에서는 가벼운 소동이 있었다.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일일이 학생들을 등단시켜 주는 가운데 시간이 너무 걸려 졸업식이 2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한명, 두명 졸업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고 바깥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상당수 의자가 비게 됐다. 그 날 연단에 있던 분들이 불쾌감을 나타내고 역정을 낸 사건은 꽤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이후 포스텍의 졸업식은 졸업생들을 일일이 등단 시키는 과정을 대폭 축소시켰고 시간도 단축됐다.
사실 이런 풍경은 다른 대형 대학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라고 한다.
요즘은 나아졌겠지만 몇년 전 서울의 한 유명대학 졸업식에 가보니 학사학위 졸업생들은 아예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왜냐고 물어보니 대학원생들만 식장에 들어가고 학사 학위생들은 가운을 입은 채 바깥에서 사진만 찍는 것이 관례화 돼 있다고 한다.
졸업식장 바깥은 꽃을 파는 장사꾼들과 가족, 친구들로 아주 무질서하고 식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졸업생들은 관심도 없이 가족, 친지들과 어울리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국 대학의 졸업식장과 미국 대학의 졸업식장 모습에서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자유분방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문화와 엄격한 규율 속에 성장하지만 남을 배려하기 힘든 문화의 차이다.
한국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는 너무도 보편화 되어 있다.
빌딩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지 않는 경우도 흔하거니와 잡아줘도 뒤따라 들어온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안 하고 휙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복잡한 길거리나 백화점에서 남을 툭 치고 지나가면서 “Excuse me(미안합니다)”는 미국에서는 생활화 되어있고 일본에서도 “스미마셍”이라는 같은 뜻의 단어가 일상 생활에서 무척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유독 한국에서는 남을 치고 지나가면서도 아무런 인사말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당하는 사람은 불쾌한데도 아무런 말이 없이 지나간다. 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할까?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최근 들었다.
한국 골프장에서도 서투른 골퍼들 뒤에서 따라오는 팀들이 야유를 하고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얼마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일본에서 골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카트가 고장나 5분여 서 있는데, 뒷 팀이 아무 소리 않고, 무작정 기다려 주었다는 것이다. 또 연세든 분도 계셔 팀 전진 속도가 느렸는데도 뒷 팀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길래 왜 그러느냐고 나중에 물어보니, 앞 팀에 압박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이 문화적 배경은 엄청 다르지만 `남을 배려하는 문화`에 있어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러한 문화가 이 두 개의 전혀 다른 국가가 선진국이 되는 힘이 아닐까?
우리도 남을 배려하는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제 한국도 하드웨어로는 선진국이다. 남은 것은 소프트웨어가 선진국이 되는 숙제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