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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하여

등록일 2016-12-12 02:01 게재일 2016-12-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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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광장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다. 민회(民會)라는 조직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 총회였다. 오늘날 직접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이 제도는 민의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중우(衆愚)정치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광화문과 전국의 촛불 집회는 이 나라 광장 민주주의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한 달간 전국의 연 650만 여명의 촛불 민심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를 탄핵으로 심판하고, 대통령을 헌법의 심판대에 세운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

광장 민주주의는 우리 민주 헌정사의 고비마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로 간접민주주의인 대의 정치의 모순과 왜곡을 응징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1960년 4·19 학생 혁명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하야와 자유당 독재 정권의 종말을 초래하였다. 4·19 혁명은 3·15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으로 출발하여 정권 교체는 이룩했으나 5·16 쿠데타로 연결돼 버린 미완의 혁명이었다. 1987년 민중항쟁은 신군부독재에 저항하여 6·29 호헌 철폐로 이어져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통한 소위 87년 헌정 체제의 출발점이 됐다. 이번 2016년 12월의 촛불시위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 대한 준엄한 심판일 뿐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비민주적, 반민주적 사회 정치 관행에 대한 응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역사의 질곡에서 정치적 위기를 잘 극복하고 오늘의 정치적 민주화 공간을 열어간 것도 광장 민주주의 덕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광장 민주의의 성공 배경은 무엇보다도 시민 사회의 성숙이다. 칼 슈미트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시민사회의 성장이 민주사회의 요건이라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정부로 상징되는 정치권력과 시장으로 대변되는 자본을 견제할 다양한 시민단체가 탄생하고 성장하였다. 과거 4·19때는 학생 세력이, 87 항쟁에서는 진보적 운동세력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의 광화문의 촛불 시위는 다양한 시민단체가 참여한 새로운 시민 혁명이다. 이번 광장에는 노동자, 농민, 문화 예술인, 교원과 학생 등 이념, 계층, 신분을 초월한 다양한 시민 세력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적 민중 시위문화는 광장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촛불 시위는 일본의 일시적인 반정부 시위나 중국의 실패한 천안문 광장 시위와는 다른 역사성을 보여준 쾌거이다.

이번 이 나라의 광장민주주의는 대통령의 퇴진 요구뿐 아니라 의회민주주의를 압박하고 견인하는 역할은 충분히 하였다. `촛불은 바람에 쉽게 소멸된다`는 일부 주장과는 달리 촛불은 횃불이 되어 타오른 것이다. 촛불민심은 청와대를 에워싸고 여의도를 긴장케 하여 국회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압도적으로 결의하게 하였다. 국회의 탄핵 가부 투표에서 찬성 234명, 반대 52명이라는 투표 결과는 이를 잘 입증한다. 특히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60명의 탄핵지지는 이 나라 의회민주주의 소생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촛불 민심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현재로서 알 수 없다. 헌법 재판은 재판관들의 법과 양심에 따른 법리적 해석과 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장의 폭발한 민심을 대폭 수용한 의회의 결의에 헌법 재판관들의 거부반응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탄핵만으로 광장 민주주의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이 나라 광장 민주주의 성공을 위해 광장의 요구를 수용하는 사회 정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핵이 종결이 아닌 출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야 정치권은 광장의 촛불 민심을 철저히 분석하고 그 처방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광장의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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