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건축물이나 유물들도 그 담아온 세월에 값하는 대접을 받는다. 대단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물건이 아닌 단순한 생활용품도 오랜 세월의 무게가 실리면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세월이란 한갓 덧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성소멸하는 삼라만상의 내력인 것이다.
사람도 한때는 노인을 공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경사회가 그렇듯이 노인이 가진 노하우야말로 그대로 삶의 지혜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축적된 삶의 내용이 그만큼의 의미와 가치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을 가져온 산업화시대를 거쳐 동서고금을 하나로 잇는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노인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선 노인은 그저 구닥다리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지혜보다는 지식이 우선인 현실, 경륜보다는 첨단이 우위인 사회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란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제사정과 의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늘어나서 바야흐로 노령인구가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수십 년이나 남은 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자식들까지 외면을 해서 경제적 노후대책조차 막연한 지경에 이르면 실로 처량하고 우울한 말년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선은, 청장년기에 못지않게 노년기도 인생의 한 중요한 시기라는 인식이 있어야겠다.
나는 노인들도 젊게 살아야 한다는 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가 않다. 화사한 옷차림에 염색을 하고 주름을 없애고 젊은 아이들 흉내를 내는 것이 노인들이 할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청년은 청년다워야 하듯이 노인은 노인다워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봄날의 신록이 싱그럽듯이 가을의 단풍도 찬란하고, 잎을 다 지운 겨울나무 역시도 그 나름의 품격과 아름다움이 있다. 늙어가는 것도 엄연하고 종요로운 인생의 한 과정인 것이고, 성장기의 풋풋함과 청년기의 무성함 못지않게 노년기의 쇠락과 허허로움도 아름다운 모습이고 절실한 정서일 수 있는 것이다.
갈수록 머리카락은 성글어지고 치아는 부실해져서 생의 일차적인 쾌락인 맛과 멋은 거의 포기를 하게 된다. 폭삭 늙어버린 외모로 남의 시선을 끌 일도 없어지고 제대로 씹을 수가 없으니 먹는 것도 즐거움이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무슨 낙으로 살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대신 외모보다는 내면으로, 사람보다는 자연에 가까워지는 거라고나 할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편안함이 있고, 거칠고 소박함에서 오는 불편함이 오히려 삶의 절실함에 닿게 한다.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는 시구처럼, 인생의 내리막길에도 풀꽃이 있고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들이 보이는 것이다. 늙음을 특별히 예찬하고 싶은 심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청춘을 돌려달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인생이 아름다운 거라면 자연스럽게 늙어가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