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 결혼 예단 문제로 고민들을 한 번씩 하게 된다.
동료 교수들 중에는 유학 중에 미국에서 아이들을 출산해 그곳 시민권을 얻은 아이들이 현지에서 결혼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제 미국 교민 300만 시대를 맞이해 현지에서 한국인 신랑, 신부와 결혼하는 것은 흔한 경우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 예단의 관습을 한국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 미국식으로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생길 정도로 결혼 풍습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식 결혼식은 부모들의 손님이 많고 부모의 생각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식은 신랑신부 친구들이 절대적으로 많고 신랑신부 위주로 진행된다.
결혼식을 끝낸 후 리셉션에서 신랑신부 친구들이 댄스파티를 여는 건 한국과는 다른 풍습이다. 때로는 신랑신부들이 부모들과 춤을 추기도 하면서 축제의 장을 갖는다. 현장 위주의 축제 혼례식이다.
반면 한국식 결혼은 일사천리로 결혼식이 진행된 후 사진 찍고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게 일반적 관례이다. 아예 하객이 결혼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축의금 내고 식사만 별도의 식당에서 하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한국 결혼식은 현장에선 간단히 진행되지만 양가의 물밑 심리전은 치열한 경우가 많다.
신랑은 집을 준비하고 신부측은 예단비를 신랑측에 줘야 하는데 그 금액의 과다를 둘러싸고 양가가 감정이 나빠지는 경우도 종종 본다. 또 부부가 결혼 후 갈라서는 경우도 예단이 크다, 작다라는 문제가 이혼 원인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얼마를 보내고 얼마를 받아야 체면 치레가 되는 것인가, 또 얼마를 돌려주는 것이 관습이냐 하는 문제로 양가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양가가 신랑에게 시계를, 신부에게는 반지와 핸드백 등을 선물해주지만 그 동시에 신부측은 예단비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신랑측은 예단으로 받은 돈의 반액을 다시 신부측으로 되돌려보내는 게 관례라고 한다. 그 고민하는 교수들을 위해 최근 아들을 결혼시킨 나이 많은 제자에게 한번 질문을 해봤다. 평소에 검소하고 겸손하고 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 제자였다.
그리고 아주 뜻밖의 좋은 충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제자는 경험담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저희는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대신 신랑신부가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모두 줬습니다. 한국이 아닌 곳이니까 특히 격식이나 관례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시어머니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 양가의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의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신부측에 이렇게 말씀하시면 사돈댁에서도 아마 흔쾌히 수락하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희들은 상견례 때 아무것도 주고받지 말고 돈 있으면 아이들 새출발하는데 보태기로 합의했습니다. 아이들도 대만족, 사돈댁에서도 모두 좋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단을 일체 주고 받지 않고 모두 아이들에게 주니까 체면과 관습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저도 양복은 커녕 구두 한 켤레 받지 않고 있는 옷과 구두 신고 결혼식 치렀습니다. 저희 어머님과 형님, 여동생 식구들도 모두 이해해 줬습니다. 미국은 결혼식을 철저히 신랑신부 위주로 치르는데, 우리는 부모가 혼주가 되는 관계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제 저희 세대부터라도 아이들 위주로 결혼식 치르는 관례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칼럼에 꼭 한 번 다뤄주세요”
이 제자에게 칼럼으로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제 쓰게 되었다.
제자의 아름다운 경험담이 이 가을의 진한 낙엽의 향기와 함께 필자의 가슴속을 따뜻이 적셔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