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은 북한 주민들이 결정한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 로타어 데메지에르가 한국을 방문하여 언론 대담에서 남긴 의미심장한 말이다. 독일 통일은 동독인들이 후손들의 장래를 위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동독인들은 마지막 선거에서 서독과 통합하려는 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였다. 그것이 1990년 10월 3일 서독 연방에 편입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독일의 통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독의 `흡수통일`이 아닌 동독인들의 `선택에 의한 통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동독인들의 주민의식의 변화와 결집이 독일 통일을 가능케 하였다. 이 공식을 한반도 통일문제에 적용하면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가 한반도 통일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변혁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체제 위기와 주민들의 의식 변화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작된 공산사회의 변혁 바람은 체코의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체제 개혁의 바람은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키고, 모스크바까지 진격하여 공산주의 종주국 소연방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시아 공산국가의 개혁의 바람은 천안문 광장에서 좌절되고 한반도의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였다. 중국은 그래도 천안문 사태의 충격으로 시장 경제를 빠르게 도입하고, 중국식 개혁·개방을 과감하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스탈린식 일인 통치를 그대로 답습하여 수령 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체제불만은 감지되고 있으나 아직도 내부의 조직적 저항은 찾아 볼 수 없다. 북한 체제 균열의 상징으로 탈북자는 늘어나지만 아직 주민들의 반체제 의식은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과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대북 강경 압박과 봉쇄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도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국내에서는 독자적인 핵개발론에 이어 미국 전술 핵 재배치론에 이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의 참수작전, 심지어 북한 지도부 제거를 위한 특공부대 육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은 북한 당국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북 압박 정책만으로 북한 당국이나 당 지도부의 정책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 당국은 이를 빌미로 체제 보위책을 강구하고 주민들을 더욱 통제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북한체제의 변화를 위해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북 정책과 방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지도부와 북한 주민을 분리시키는 정책`을 집행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여기에는 북한 노동당원 약 350만을 2천200만 북한 주민과 분리시켜 북한체제의 변혁을 유도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그러나 북한 집단주의 체제의 속성상 북한 당국과 주민을 분리시키기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이다. 그것이 선언 이상의 의미를 지니려면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대북 압박정책만으로 북한 당국에 긴장과 체제 위기는 불러올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어렵다. 결국 현재와 같은 남북 간의 최악의 긴장과 대결국면이 끝나면 남북은 다시 대화의 국면으로 나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통일을 위한 주민의식 변화를 위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마련하여야 한다. 서독의 동방 정책은 서독의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양독의 정부와 민간 교류를 병행한 `작은 걸음 정책`이 독일 통일이라는 위업을 이룩하였다. 우리의 대북 정책이 강온전략이나 투 트랙 전략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남북한의 상호 교류와 접촉을 넓히는 정책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지난 시기 대북 교류 협상 경험이 우리에게 준 소중한 교훈이다. 현재의 대북 선전 삐라만으로는 북한주민들의 의식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우리의 대북 정책도 대북 주민 접촉을 넓히는 방책을 지금부터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