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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와 `전공예우`

등록일 2016-10-06 02:01 게재일 2016-10-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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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의호<br /><br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전관예우(前官禮遇) 라는 단어가 있다.

좁은 뜻으로는 판사나 검사로 재직하다가 변호사로 갓 개업한 사람이 맡은 소송에 대해 후배인 판검사들이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전관예우는 법조계에서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없어져야 할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종종 언론에 오르내리는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우리 사회의 폐단 중의 하나로 늘 비난받고 있다.

그런데 전관예우는 좀 더 큰 뜻으로는 전직 관료나 전직 직위에 대한 전반적인 예우를 일컫는다.

전관예우는 잘만 활용되고 쓰인다면 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닐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전 대통령(former president)`이라는 말 대신에 그냥 `대통령(president)`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전직 장관이나 총장을 그냥 장관, 총장으로 부르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렇게 부르는 모습은 때로는 정겹고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그 직위에 있으면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에서 전관예우는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전관예우가 개인의 사욕을 위해 사용되고 사회정의에 반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건 옳지 않기에 전관예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직 관료였기에 특혜를 받아서도 안 되고 그러한 특혜를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단어가 `전공 예우(前功禮遇)`이다.

전에 공을 세운 분들을 예우하자는 것이다.

전관과 전공은 차이가 있다.

전관은 단순히 전에 관직에 있었다는 것이고 전공은 전에 공을 세웠다는 의미이므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얼마 전 우리가 잘 아는 전직 시장 한 분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오래 전 필자의 친구도 관직을 하다가 같은 선택을 한 적이 있다.

이유가 여러가지겠지만, 전공예우의 부족이 종종 그런 분들을 허탈 속으로 몰아가고 삶을 힘들게 하는 경우를 본다.

얼마전 필자 자신도 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냥 나온 경험이 있다. 행사장 분위기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오가 있는 전임에 대해서는 그 과오를 물어야 하겠지만, 공이 있는 전임에 대해서 그 공을 알아주고 그 공에 상응한 대우를 해주는 전공예우는 기본적인 사회적 도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몇 년전 어느 한국 대학 졸업식에 간 적이 있는데 행사장 바깥에서 산책을 하는 전임 총장을 본 적이 있다.

잘 아는 분이기에 왜 여기 계시냐고 물으니까 그냥 빙그레 웃음으로 답하셨다. 아마도 행사장에 초청은 되었지만 전공예우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최근 포항에 한국 과학의 최첨단 작품인 제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준공되었다.

4세대 가속기는 정말 우여곡절을 겪어 포항에 유치됐다. 몇 년전 유치 당시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여러 분들이 꽤 고생을 했고, 새벽에 서울로 차를 몰고 가기도 했다.

사정은 있었겠지만 그 분들의 모습을 그곳에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크게는 국가를, 작게는 지역을, 그리고 조직에 공헌한 여러 분들에 대한 전공예우에 우리는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공예우, 공을 세운 전직을 항상 생각하고 예우하는 건 사회의 좋은 전통일 것이다.

새로운 단어 하나를 사전에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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